[ESSAY]평화의 감 / 최근호

2019-04-16


평화의 감 / 최근호


눌렀는가 친구들.

그럼 어서 평화 얘길 나눠봄세.

어찌 그리 바쁘냐고? 아, 그럴 만한 일이지 이 사람아.

요즘같이 독 오른 세상에 이 얼마나 큰 낭만인가?


내 골고루 생각해 보아하니, ‘평화’라는 것을

바람에 따라 그 맛이 깊어지는 감에 비유하면 아주 딱이겠더구만.

자고로 감이란 그 주변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세 가지 맛으로 나뉘게 마련인데.


평화의 첫 번째 감은 잘 익은 ‘단감’이요,

홀로 즐기는 맛이 또 일품인, 따스한 햇살 아래 낮잠 같은 평화 롬일세.


그리고 그 두 번째 감은 적당히 세월을 맞은 ‘홍시’인데,

이 감은 좋은 것을 남과 나눌 때에 절로 따라오는 ‘설렘’ 이나 ‘행복’이, 그에 이은 순전한 ‘화해’ 나 ‘화합’과 같은 마음들과 어울릴수록 한층 더 깊고 진한 풍미를 내게 되는 법이라오. 벗과 함께 떠난 기차 여행. 차창 너머로 그토록 기다리던 동해 바다의 풍경이 펼쳐질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진 | 김슬기 @seulzzangkim 


세 번째 평화에 대한 비유는 바로 ‘곶감’인데, 그 껍질을 온전히 벗고 좋은 바람을 품어야만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평화의 모습과 닮아 있소. 그 예로 내 지난 2007년에 겪은 잊지 못할 경험을 하나 들려줄까 하는데, 때는 배철수가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록 페스티벌 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럽소이다.” 며 개탄을 금치 않던 시절이었소. 

물론 그러기에 나와 친구들은 더더욱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같은 쾌재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게지.

그날 밤, 그 넓은 축제의 땅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에.

음악과 춤에 빠진 그이들의 입가에서 터져 나오던 신열에.

그해의 기록적인 폭염을 물리치고 남을 정도로 뜨거웠던 순간들에, 기꺼이 동참해 활활 녹아들기 위해 말이오.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 뜻깊은 축제의 끝을 장식했던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곡 ‘Saturate’ 이 가파른 전자음을 타고 꼭짓점을 향해 차오르다 집채만 한 멀티비전을 가득 메운 최첨단 디지털 소스 영상과 함께 송도의 흙바닥 위로 쏟아져 내렸을 때, 수천수만의 사람들과 하나 되어 느낀 그 황홀감은, 나 스스로의 껍질을 벗고 맞이했던 정말이지 좋은 바람이 아니었나 싶소.


나는 그때 그렇게, 전에 없던 평화의 감을 맛보았던 것이오. 진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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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졸았나?

... 시진이 벌써 이리 흘렀구만.

아쉽지만 나는 이제 떠나야 할 것 같구려.

독일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오.

모르오? 게서 '다펑(Daft Punk)'의 공연이 있단 말이오.

멀찍이서 하이바라도 보려면 바삐 가야 하오.



최근호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The Chemical Brothers - Saturate



2007년 인천 송도. 쩍쩍 갈라진 대한민국 레이버들의 목을 적셔준 단비 같은 곡.

우여곡절 끝에 국내 정착을 마친 당시 페스티벌 문화를 기리며.


Sigur Ros - Hoppipolla



한강 둔치를 달리다가, 곡이 다 끝날 때까지 강만 바라봤던 기억.


조용필 - Bounce


대한민국 평화 운동의 상징. 살아있는 전설, 가왕 조용필의 바운스. 전국 각지 단발머리 고수들의 리믹스를 고대하며.



☮ Writer | 최근호


시나리오 작가. 평화통일이 실현된 근미래, 김일성 광장에서 개최되는 '제 1회 평양 롹 페스티벌'에 관한 멜로 영화를 구상 중. 로동 1호 탄도미사일을 축포로 쏘아 올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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