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코로나 시대, 페스티벌 사무국 신입 업무일지 : 모든 춤에 삶이 있다 / 장채영
2020-05-19
코로나 시대, 페스티벌 사무국 신입 업무일지 : 모든 춤에 삶이 있다 / 장채영
페스티벌 고어(Festival Goer), 페스티벌에 가는 사람. 나는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페스티벌 고어이다. 페스티벌 현장에 있을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온몸의 감각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 그 순간 말이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부대껴 사랑과 자유를 외치며 진정으로 하나 되는 우리가 좋다.
19년, 작년 여름. 평생의 꿈이었던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에 페스티벌 고어로서 있었다. 캠핑존에서 사랑하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의 리허설을 모닝콜로 듣고 일어나니, 비로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에 있던 할머니는 오렌지색 스타킹을 신고 춤을 추었고, 옆에는 할아버지가 저글링을 하며 춤을 추고 계셨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모든 춤에 삶이 있었다.
ⓒ 장채영 / 2019 글라스톤베리 피라미드 무대
문화를 전공했고, 문화기획은 시간을 기획한다는 것이라 배웠다. 그 시간이 모여 만들어낸 현장의 힘,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감각 기관들을 열어 경험하는 힘을 믿으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하는 세계문화기획자를 꿈꿨다. 음악, 사람 그리고 이야기들이 함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더랬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채용공고 소식을 봤다. 공고를 본 순간, 가슴이 떨렸다. 홍보마케팅 1명, 경영기획팀 1명,,, 아주 작은 문틈이었다. 그렇다고 안 벌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발걸음을 믿었다. 무엇보다 이 회사면 내가 취업을 해도 나의 색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서류에 합격했고 면접을 봤다.
2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에 신입 팀원으로 합류했다. 사무실은 홍대와 합정동 사이에 있다. 페스티벌 사무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사무국 사람들은 페스티벌 및 문화예술 전반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페스티벌 자원봉사 유경험자, 페스티벌 고어들이 경험한 시간이 모인 곳이었다. 올해 피스트레인에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내가 맡은 업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기획운영팀 소속으로 예술감독 및 프로그래머 업무 협력, 스페셜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홍보 영상 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았다.
블라인드 티켓팅이 진행되던 날, 2시가 되자마자 사무국원들은 예매 창만 바라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 15초 만에 매진이 되었다.
3월, 첫 번째 업무로 페스티벌 라인업 아티스트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내가 평생 하던 것이 디깅(Digging)아니겠는가, 라인업이 발표되기 전이었기에 비공개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낮이고 밤이고 들으며, ‘왜’ 보다는 그저 열심히 하려고만 하는 열정 가득 페스티벌 신입 팀원 ‘미생’ 자아에 취해있었다.
나는 피스트레인의 색깔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스페셜프로그램의 세 무대를 매니징했다.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철원에서 펼쳐지는 첫 번째 공연. 소이산을 직접 오르며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판타지극 [산의 뱃속]은, 사무국에서 윤재원 연출님께 제안해 창작된 작품으로 작년 우천으로 취소돼서 올해 더 마음을 쓰는 공연이라고 했다. 답사하러 갔을 때 소이산 정상을 오르며 저 멀리 북한이 보였다. 가까웠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무대 노동당사 싱어롱 [함께, 노래]는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군가, 가곡, 가요를 편곡하시고, 철원의 네 합창단과 관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다. 총 자국이 여럿 남아있는 노동당사 건물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울려 퍼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다. 철원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저 북쪽까지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평화와 역사 한 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함께 모여 노래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말이다.
세 번째 무대 백마고지 뮤직트레킹 [앞.선.], 6.25의 아픔이 있는 백마고지 GOP 앞 광장 일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뒤늦게 합류해서 생소한 단어가 많았기에 국방부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날락하곤 했다. 민간인 통제선을 들어가야 하기에 신분 검사도 한다고 했다. 공연 기획을 위해서, 여러 절차가 필요하고 ‘통제’라는 단어조차 조금은 무서운 이 사실에 우리나라가 진정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몸소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의 여파로 민간인 출입 통제선 출입 허가가 어려워 답사도 쉽지 않았다. 작년에는 월정리역의 공연이 있었다면, 올해 새롭게 진행되는 가장 최전방에서 공연. 잠비나이와 모아티에가 아주 미스테리하게 공연을 할 예정이었기에, 올해 피스트레인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었지만, 포스터도 공개하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 TRIANGLE-STUDIO / 공개 예정이었던 백마고지 뮤직트레킹 [앞.선.] 포스터
내외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아직 업무가 적응되지도 않았는데, 점차 맡은 업무들이 흐릿해졌다. 총감독님과 팀장님 예술 감독님은 나의 궁금증에 그저 기다리라고만 하셨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답답했다.
4월, 페스티벌이 하나 둘 씩 취소되고, 페스티벌, 공연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힘들다고 말했다. 페스티벌 신입 팀원이기 전에 페스티벌 고어인 나는, 예매한 페스티벌과 공연들이 하나 둘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현장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이 내 살 끝에 앉아 공기를 도사렸다.
그리고 5월, 우리 페스티벌도 연기와 축소가 확정됐다. 수만 가지의 변수를 기획운영팀과 홍보마케팅팀 그리고 경영기획팀은 계속해서 수정하고 수정한다. 내가 맡은 3개의 스페셜 프로그램도 단 한 가지, 소이산 판타지극 [산의 뱃속] 프로그램만 진행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사무국은 더 단단해졌다. 총감독님은 여전히 무기력하고 갈팡질팡하지만, 연기 및 축소를 결정했으니 남은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보자며 다독여주셨다. 팀장님은 뮤지션의 신곡을 보내주시며 힘을 주셨다. 매니저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슬픈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켜보기도 했다. 기획운영팀의 시스템상 예약된 표를 본인 손으로 모두 취소해야 되는 은비 매니저와 해외 아티스트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일이 없어 백수가 됐다며 웃는 예은 매니저. 자원봉사자 피스메이커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오프라인 평화교육을 취소하고 화상으로 진행한다는 경영기획팀의 충현 매니저, 관객들과 가장 활발히 소통하며 홍보 일정을 바꾸고, 입장문을 재차 수정하는 홍보마케팅팀의 보라, 예슬 매니저까지. 불확실성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일에 대한 애환, 그러나 이것은 새롭게 도래한 코로나 시대에 불가피한 숙명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이 시기가 지나면 그토록 간절하던 마음이 모여 성장한 우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장채영 / 연남장 ‘DMZ 景, 철원’ 전시를 관람한 피스트레인 매니저들
스물셋의 여름, 단지 음악이 좋다는 이유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선택해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때가 생각난다. 가난한 유학생과 외국인 노동자로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때, 외롭고 불완전했던 타지 생활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음악뿐 이었다.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을 봤지만 가장 기억 남는 공연이 있다. 춤을 추던 그 순간.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숨통이 트이던 그 기분. 온몸의 세포가 밴드의 운율과 함께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나의 호흡 기관은 코와 입만이 아니라고 귀로도 숨을 쉬고 있는 그 느낌. 음악이라는 사랑으로 불완전한 삶을 가득 채워 나갈 힘을 만들어 준 순간. 모든 숨에 삶이 있다.
7월 철원에서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모든 걱정은 잠시 잊고 춤을 출 수 있는 그 순간을, 귀로 숨을 쉬며 평화로운 몸과 흥이 넘치는 마음으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장채영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Amelie Lens – Hypnotized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오래된 미래의 테크노. 내한 공연이 연기된 것이 무척 아쉽다.
Radiohead - No Surprises
인생 곡. 2016년 섬머소닉(Summer Sonic)에서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Khruangbin – Zionsville
더블린의 작은 공연장에서, 내가 귀로 숨을 쉰다는 것을 알려준 음악.
☮ Writer | 장채영
세계음악여행자. 듣고 쓰고 찍는다. 일상에서는 귀로 숨을 쉬며 음악으로 여행한다. 지금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기획운영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천과 이태원을 기반으로 1인 출판사 ‘일곱개의 숲'을 운영한다. 아일랜드 유학생 27인 인터뷰집 <지금 여기, 더블린사람들처럼>을 독립출판했다. 과거에는 글로벌 공연브랜드 <소파사운즈 더블린(Sofar Sounds Dublin)>, <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기획자,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페스티벌 고어(Festival Goer), 페스티벌에 가는 사람. 나는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페스티벌 고어이다. 페스티벌 현장에 있을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온몸의 감각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 그 순간 말이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부대껴 사랑과 자유를 외치며 진정으로 하나 되는 우리가 좋다.
19년, 작년 여름. 평생의 꿈이었던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에 페스티벌 고어로서 있었다. 캠핑존에서 사랑하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의 리허설을 모닝콜로 듣고 일어나니, 비로소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에 있던 할머니는 오렌지색 스타킹을 신고 춤을 추었고, 옆에는 할아버지가 저글링을 하며 춤을 추고 계셨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모든 춤에 삶이 있었다.
ⓒ 장채영 / 2019 글라스톤베리 피라미드 무대
문화를 전공했고, 문화기획은 시간을 기획한다는 것이라 배웠다. 그 시간이 모여 만들어낸 현장의 힘,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감각 기관들을 열어 경험하는 힘을 믿으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하는 세계문화기획자를 꿈꿨다. 음악, 사람 그리고 이야기들이 함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더랬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페스티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채용공고 소식을 봤다. 공고를 본 순간, 가슴이 떨렸다. 홍보마케팅 1명, 경영기획팀 1명,,, 아주 작은 문틈이었다. 그렇다고 안 벌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발걸음을 믿었다. 무엇보다 이 회사면 내가 취업을 해도 나의 색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서류에 합격했고 면접을 봤다.
2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에 신입 팀원으로 합류했다. 사무실은 홍대와 합정동 사이에 있다. 페스티벌 사무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사무국 사람들은 페스티벌 및 문화예술 전반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페스티벌 자원봉사 유경험자, 페스티벌 고어들이 경험한 시간이 모인 곳이었다. 올해 피스트레인에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내가 맡은 업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기획운영팀 소속으로 예술감독 및 프로그래머 업무 협력, 스페셜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홍보 영상 콘텐츠 기획 업무를 맡았다.
블라인드 티켓팅이 진행되던 날, 2시가 되자마자 사무국원들은 예매 창만 바라보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듯 15초 만에 매진이 되었다.
3월, 첫 번째 업무로 페스티벌 라인업 아티스트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내가 평생 하던 것이 디깅(Digging)아니겠는가, 라인업이 발표되기 전이었기에 비공개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낮이고 밤이고 들으며, ‘왜’ 보다는 그저 열심히 하려고만 하는 열정 가득 페스티벌 신입 팀원 ‘미생’ 자아에 취해있었다.
나는 피스트레인의 색깔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스페셜프로그램의 세 무대를 매니징했다.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철원에서 펼쳐지는 첫 번째 공연. 소이산을 직접 오르며 진행되는 관객 참여형 판타지극 [산의 뱃속]은, 사무국에서 윤재원 연출님께 제안해 창작된 작품으로 작년 우천으로 취소돼서 올해 더 마음을 쓰는 공연이라고 했다. 답사하러 갔을 때 소이산 정상을 오르며 저 멀리 북한이 보였다. 가까웠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무대 노동당사 싱어롱 [함께, 노래]는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군가, 가곡, 가요를 편곡하시고, 철원의 네 합창단과 관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이다. 총 자국이 여럿 남아있는 노동당사 건물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울려 퍼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다. 철원을 공부하면 할수록, 이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저 북쪽까지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평화와 역사 한 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함께 모여 노래하는 것이 맞을지 고민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말이다.
세 번째 무대 백마고지 뮤직트레킹 [앞.선.], 6.25의 아픔이 있는 백마고지 GOP 앞 광장 일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뒤늦게 합류해서 생소한 단어가 많았기에 국방부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날락하곤 했다. 민간인 통제선을 들어가야 하기에 신분 검사도 한다고 했다. 공연 기획을 위해서, 여러 절차가 필요하고 ‘통제’라는 단어조차 조금은 무서운 이 사실에 우리나라가 진정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몸소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의 여파로 민간인 출입 통제선 출입 허가가 어려워 답사도 쉽지 않았다. 작년에는 월정리역의 공연이 있었다면, 올해 새롭게 진행되는 가장 최전방에서 공연. 잠비나이와 모아티에가 아주 미스테리하게 공연을 할 예정이었기에, 올해 피스트레인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었지만, 포스터도 공개하지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 TRIANGLE-STUDIO / 공개 예정이었던 백마고지 뮤직트레킹 [앞.선.] 포스터
내외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아직 업무가 적응되지도 않았는데, 점차 맡은 업무들이 흐릿해졌다. 총감독님과 팀장님 예술 감독님은 나의 궁금증에 그저 기다리라고만 하셨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답답했다.
4월, 페스티벌이 하나 둘 씩 취소되고, 페스티벌, 공연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힘들다고 말했다. 페스티벌 신입 팀원이기 전에 페스티벌 고어인 나는, 예매한 페스티벌과 공연들이 하나 둘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현장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이 내 살 끝에 앉아 공기를 도사렸다.
그리고 5월, 우리 페스티벌도 연기와 축소가 확정됐다. 수만 가지의 변수를 기획운영팀과 홍보마케팅팀 그리고 경영기획팀은 계속해서 수정하고 수정한다. 내가 맡은 3개의 스페셜 프로그램도 단 한 가지, 소이산 판타지극 [산의 뱃속] 프로그램만 진행된다. 흐릿한 시야에서 사무국은 더 단단해졌다. 총감독님은 여전히 무기력하고 갈팡질팡하지만, 연기 및 축소를 결정했으니 남은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보자며 다독여주셨다. 팀장님은 뮤지션의 신곡을 보내주시며 힘을 주셨다. 매니저들은 서로를 응원하고 슬픈 상황을 웃음으로 승화시켜보기도 했다. 기획운영팀의 시스템상 예약된 표를 본인 손으로 모두 취소해야 되는 은비 매니저와 해외 아티스트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일이 없어 백수가 됐다며 웃는 예은 매니저. 자원봉사자 피스메이커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오프라인 평화교육을 취소하고 화상으로 진행한다는 경영기획팀의 충현 매니저, 관객들과 가장 활발히 소통하며 홍보 일정을 바꾸고, 입장문을 재차 수정하는 홍보마케팅팀의 보라, 예슬 매니저까지. 불확실성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일에 대한 애환, 그러나 이것은 새롭게 도래한 코로나 시대에 불가피한 숙명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이 시기가 지나면 그토록 간절하던 마음이 모여 성장한 우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 장채영 / 연남장 ‘DMZ 景, 철원’ 전시를 관람한 피스트레인 매니저들
스물셋의 여름, 단지 음악이 좋다는 이유로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라는 도시를 선택해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때가 생각난다. 가난한 유학생과 외국인 노동자로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때, 외롭고 불완전했던 타지 생활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은 음악뿐 이었다. 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을 봤지만 가장 기억 남는 공연이 있다. 춤을 추던 그 순간.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숨통이 트이던 그 기분. 온몸의 세포가 밴드의 운율과 함께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나의 호흡 기관은 코와 입만이 아니라고 귀로도 숨을 쉬고 있는 그 느낌. 음악이라는 사랑으로 불완전한 삶을 가득 채워 나갈 힘을 만들어 준 순간. 모든 숨에 삶이 있다.
7월 철원에서도, 사랑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모든 걱정은 잠시 잊고 춤을 출 수 있는 그 순간을, 귀로 숨을 쉬며 평화로운 몸과 흥이 넘치는 마음으로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Amelie Lens – Hypnotized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오래된 미래의 테크노. 내한 공연이 연기된 것이 무척 아쉽다.
Radiohead - No Surprises
인생 곡. 2016년 섬머소닉(Summer Sonic)에서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Khruangbin – Zionsville
더블린의 작은 공연장에서, 내가 귀로 숨을 쉰다는 것을 알려준 음악.
☮ Writer | 장채영
세계음악여행자. 듣고 쓰고 찍는다. 일상에서는 귀로 숨을 쉬며 음악으로 여행한다. 지금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기획운영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천과 이태원을 기반으로 1인 출판사 ‘일곱개의 숲'을 운영한다. 아일랜드 유학생 27인 인터뷰집 <지금 여기, 더블린사람들처럼>을 독립출판했다. 과거에는 글로벌 공연브랜드 <소파사운즈 더블린(Sofar Sounds Dublin)>, <소파사운즈 인천>의 공연기획자,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