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이 있다. 300여 일 전쯤부터. 내가 그동안 만나온 사람 중에, 아니 세상에서 본 사람 중에 이 사람보다 귀여운 사람은 없었다. 현재 우리는 롱디 중이다. 나는 경기도에 살고 있고 그는 경남에 살고 있다. 지도상의 거리는 411km. 관계를 위해 매번 어마어마어마어마한 거리를 좁혀야 한다. 게다가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그는 나를 보러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그게 좀… 지금으로서는 신체적인 사정이 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에 매몰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다. 그가 나를 보러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보다 나는 그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비록 나도 시간적인 사정으로 마음만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를 만나러 간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있고 기차를 타고 갈 때도 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가 사는 집은 공항도 기차역도 멀기 때문에 내려서는 차까지 타고 가야 한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롱디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멀었던 만큼 가까워지는 느낌을. 시간의 스트레칭이랄까.
며칠 전에도 그를 만나러 갔다. 초인종을 눌렀고 3~4초 정도 뒤에 문이 열렸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 품에 스-윽 들어왔다. 그렇게 곧바로 안긴 것은 우리가 만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활하며 받았던 충격들이 말소되는 순간이었다. 감격은 충격을 잊게 하는 것일까. 언젠가 그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나는 그 순간을 그 소리를 절대 잊지 못하리라. 스-윽. 얼마 전 10개월을 맞이한 나의 첫 조카, 김도하가 내 품에 들어왔던 순간이다.
ⓒ brandon hoogenboom, unsplash
도하를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 갔었다. 여느 때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고봉밥을 먹었고 상을 치운 뒤에는 오래된 마루 위에 각자의 두 다리를 펴고 앉았다. 앉은 자세 그대로 드러누운 외삼촌도 있었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핸드폰을 하는 아빠도 있었고 사과를 깎으며 자신의 엄마와 사각사각 목소리를 섞고 있는 나의 엄마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서 마당을 보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날이었다. 기계 소리와 빌딩의 그림자는 없고 사과 깎는 소리와 배부른 구름만 보이는.
엄마는 사과를 한 조각씩 접시에 올려놓았다. 소담하게 담긴 사과 조각들이 마치 마루에 모인 가족들 같았다. 사과 조각들이 접시에 다 모였을 때 외할머니는 내 쪽으로 “태재야 사과 먹어라.” 말씀하시며 그 접시를 미셨는데, 그때 접시가 밀리며 소리가 났다. 스-윽. 평생 몇 번이고 그랬을 텐데, 그 소리가 그날 새삼 귀에 들어왔고 귀를 지나 내 마음에 자리했다.
문득, 외할머니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감사한 것과는 달리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던가. 처음 글자를 배우고 부모님의 안내에 따라 가족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볼 때 있었을 이름일 텐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끄럽다. 기억난다고 해도 외할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나는 외할머니를 평생 외할머니라고만 불러보았겠지.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이름보다 역할로 불리는 일이 더 오래되었을 나의 외할머니. 부디 당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의 건강이 나의 건강 안에 포함되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조카 도하도 슬슬 말을 시작할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 사물을 부르기 위해 이름들을 알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도하의 외삼촌이지만 그냥 외삼촌보다는 태재 외삼촌이라고 불리고 싶다. 역할만 있기보다 나의 이름도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다. 도하가 내 이름을 다른 이름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이야기도 마련하고 싶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만든 이야기를 도하의 귀에 스-윽 밀어 넣고 싶다. 도하는 내 품으로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틈틈이 평화를 연습할 것이다. 사각사각 사과를 깎을 때마다, 접시를 미는 연습도 같이 하면서.
태재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주윤하 - 그대 어디에 있더라도
배선용 - Nonverbal560
Los Indios Tabajaras - Always In My Heart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싶을 때 듣는 곡들이다. 가사는 없지만 그림을 그려주는 곡들. 말 없이도 대화하고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평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Writer | 태재
용산구 해방촌의 작은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영차영차 근무 중. 퇴근 후에는 글쓰기 선생님. 쓰고싶은 사람들에게 쓰는 짓의 유용함을 공유 중.
만나는 사람이 있다. 300여 일 전쯤부터. 내가 그동안 만나온 사람 중에, 아니 세상에서 본 사람 중에 이 사람보다 귀여운 사람은 없었다. 현재 우리는 롱디 중이다. 나는 경기도에 살고 있고 그는 경남에 살고 있다. 지도상의 거리는 411km. 관계를 위해 매번 어마어마어마어마한 거리를 좁혀야 한다. 게다가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그는 나를 보러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그게 좀… 지금으로서는 신체적인 사정이 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에 매몰될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다. 그가 나를 보러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보다 나는 그를 보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비록 나도 시간적인 사정으로 마음만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그를 만나러 간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있고 기차를 타고 갈 때도 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가 사는 집은 공항도 기차역도 멀기 때문에 내려서는 차까지 타고 가야 한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롱디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멀었던 만큼 가까워지는 느낌을. 시간의 스트레칭이랄까.
며칠 전에도 그를 만나러 갔다. 초인종을 눌렀고 3~4초 정도 뒤에 문이 열렸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 품에 스-윽 들어왔다. 그렇게 곧바로 안긴 것은 우리가 만난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활하며 받았던 충격들이 말소되는 순간이었다. 감격은 충격을 잊게 하는 것일까. 언젠가 그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나는 그 순간을 그 소리를 절대 잊지 못하리라. 스-윽. 얼마 전 10개월을 맞이한 나의 첫 조카, 김도하가 내 품에 들어왔던 순간이다.
ⓒ brandon hoogenboom, unsplash
도하를 만나기 전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 갔었다. 여느 때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고봉밥을 먹었고 상을 치운 뒤에는 오래된 마루 위에 각자의 두 다리를 펴고 앉았다. 앉은 자세 그대로 드러누운 외삼촌도 있었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핸드폰을 하는 아빠도 있었고 사과를 깎으며 자신의 엄마와 사각사각 목소리를 섞고 있는 나의 엄마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아서 마당을 보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날이었다. 기계 소리와 빌딩의 그림자는 없고 사과 깎는 소리와 배부른 구름만 보이는.
엄마는 사과를 한 조각씩 접시에 올려놓았다. 소담하게 담긴 사과 조각들이 마치 마루에 모인 가족들 같았다. 사과 조각들이 접시에 다 모였을 때 외할머니는 내 쪽으로 “태재야 사과 먹어라.” 말씀하시며 그 접시를 미셨는데, 그때 접시가 밀리며 소리가 났다. 스-윽. 평생 몇 번이고 그랬을 텐데, 그 소리가 그날 새삼 귀에 들어왔고 귀를 지나 내 마음에 자리했다.
문득, 외할머니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감사한 것과는 달리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던가. 처음 글자를 배우고 부모님의 안내에 따라 가족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볼 때 있었을 이름일 텐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끄럽다. 기억난다고 해도 외할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던가. 아마도 나는 외할머니를 평생 외할머니라고만 불러보았겠지. 자신의 이름이 있지만 이름보다 역할로 불리는 일이 더 오래되었을 나의 외할머니. 부디 당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족의 건강이 나의 건강 안에 포함되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조카 도하도 슬슬 말을 시작할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 사물을 부르기 위해 이름들을 알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도하의 외삼촌이지만 그냥 외삼촌보다는 태재 외삼촌이라고 불리고 싶다. 역할만 있기보다 나의 이름도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다. 도하가 내 이름을 다른 이름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이야기도 마련하고 싶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 그렇게 만든 이야기를 도하의 귀에 스-윽 밀어 넣고 싶다. 도하는 내 품으로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틈틈이 평화를 연습할 것이다. 사각사각 사과를 깎을 때마다, 접시를 미는 연습도 같이 하면서.
주윤하 - 그대 어디에 있더라도
배선용 - Nonverbal560
Los Indios Tabajaras - Always In My Heart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싶을 때 듣는 곡들이다. 가사는 없지만 그림을 그려주는 곡들. 말 없이도 대화하고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평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Writer | 태재
용산구 해방촌의 작은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영차영차 근무 중. 퇴근 후에는 글쓰기 선생님. 쓰고싶은 사람들에게 쓰는 짓의 유용함을 공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