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빗속에 달려나온 관객, '뮤직 페스티벌 가는 이유' 보여줬다

2019-07-04

빗속에 달려나온 관객, '뮤직 페스티벌 가는 이유' 보여줬다

[현장] 분단 잊게 한 '평화의 노래', 철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오마이뉴스 이현파 기자]

원문보기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047&aid=0002194343



지난 주말, 강원도 철원에서 제2회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강원도, 철원군, 서울시, 사단법인 피스트레인 주최)이 열렸다. 이 페스티벌은 독특한 라인업, 그리고 '철원 바이브'라고 불릴만큼 뚜렷한 지역색으로 호평받았던 바 있다. 6월 7일부터 9일에 걸쳐 고석정, 월정리역, 노동당사에서 다양한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9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가만히 서 있다 보면 머리를 감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비를 찾거나, 돗자리에 쌓아놓은 짐이 젖지 않도록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소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영국 록밴드 피스(Peace)가 등장했다. 'Bloodshake'의 캐치한 기타 리프가 들려오자마자, 소란은 멎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지만,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기차놀이를 하고 슬램을 즐겼다. 무대에서 그 모습을 본 피스의 보컬 해리 코이저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퇴사', '어차피 덕질할 거라면 행복하게 덕질하자' 등 개성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 역시 휘날렸다. 누군가가 '뮤직 페스티벌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좋은 대답이 될 수 있는 장면이다.


비를 맞아도 '그저 좋다'
 

오프온오프의 보컬 콜드(Colde)는 이 페스티벌을 위해 독특한 선곡을 들고 왔다. 알앤비 음악을 을 하는 그이지만, 자신이 즐겨 들었던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마지막곡으로 준비해온 것이다. 'Wonderwall'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텐트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들도 무대 앞으로 달려나와 노래했다. 빗줄기는 분명히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음악에 또 다른 생기를 불어넣는 힘도 가지고 있다.

여러 매체의 찬사를 받은 덴마크 밴드 아이스에이지(Iceage)의 무대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포스트펑크와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사운드는 관객을 압도했다. 밴드의 보컬 엘리아스 로넨펠트의 목소리는 자기 파괴를 노래하는 밴드의 정서와 안성맞춤이었다. 무대 위에 드러눕더니 비닐우비를 온몸에 칭칭 둘러매기도 했다. 브렛 앤더슨(스웨이드)이나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스트록스), 이언 커티스(조이 디비전) 등 록스타들을 섞어놓은 듯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던 시간,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공연 역시 무대에 올랐다. 공연을 보고 있는데 마치 라디오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곡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긋나긋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등 이들의 역사를 수놓은 명곡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그렇게, 아직 20세기의 제 3세계 남루한 사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싸구려 미끼를 던지는 먼 먼 바다위론 태양 빛, 한 태양빛 아래 동과
서로 날짜를 바꾸는 일자변경선이 지나가고" - '정동진 3' 중


그 중에서도 8분의 대곡 '정동진 3'은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박은옥은 "퀸에게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다면, 정태춘에게는 '정동진'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의 팬카페 회원들에게만 사랑받는다는 것이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 곡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을만큼 강한 몰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여행 이후 정태춘이 써 내려간 이 곡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의 불평등을 신랄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앵콜곡으로 40년 전에 쓰여진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역시 두 사람은 영원한 음악 동지이자, 연인이었다.

이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은 뮤지션은 아마 존 케일이었을 것이다. 존 케일은 '모든 대안적인 것들의 원조'라고 불린 전설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원년 멤버다. 루 리드와 함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적 실험을 지휘한 장본인으로서, 패티 스미스를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이 날 공연에서 존 케일은 특유의 전위적인 음악들을 여럿 선보였다.

정교한 소리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뤘다. 그의 음악은 일렉트로니카, 포크, 로큰롤 등 어느 하나의 장르로 규정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에 맞게, 환각적인 분위기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팬들을 위한 서비스도 확실했다. 피아노를 치면서 'I'm Waiting For The Man'을 부르고, 'Venus In Furs'를 부르면서 그 유명한 비올라 파트를 연주했다. 루 리드가 사망하고 없는 지금,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철원 뿐이었다. 최근 솔로 앨범을 발표한 새소년의 황소윤도 함께 무대에 올라 존 케일과 함께 기타를 연주했다. 존 케일은 1942년에, 황소윤은 1997년에 태어났다. 음악 앞에서 55년의 세대 차이는 무의미해졌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고석정 공원의 분수대에 자리잡은SCR 스테이지(Seoul Community Radio)였다. 대낮부터 새벽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디제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나도 분수대 단상 위로 올라가 춤을 췄다. 사람들은 물이 자신에게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췄다(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춤을 췄던 중년의 철원 군민을 기억한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이틀 동안 페스티벌을 즐기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좋은 여운이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철원은 곧 '최전방'의 동의어였다. 철원은 노동당 당사와 군부대 등 역사 속 분단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군인 시절 훈련을 위해 장갑차를 타고 갔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이후, 나에게 있어 '철원'은 음악과 축제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전방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모처럼 시끌벅적해졌다. 한국, 영국, 헝가리, 대만, 덴마크,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뮤지션들이 모여 각자의 멋을 뽐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이라는 올해의 슬로건처럼,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어울려 놀았고, 메밀전병을 먹었다. 젊은이와 노인, 군인과 민간인, 서울 사람과 시골 사람 따위의 구분은 의미를 잃었다. 피스트레인은 잊혀져 가던 지역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오마이뉴스 이현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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