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음악을 선곡하는 그 마음, 가장 순수한 결정체니까
/ 피스트레인 프로그래머 ‘박정용’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사무국에서 입을 모아 외친 사람은 단연 박정용 프로그래머님이었다. 왜인지 20여 년 넘게 음악 산업에서 계셨던 프로그래머님이라면, 지금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실 것 같았다. 공연장을 운영하는 대표님의 지난 2년의 시간은 어땠을까? 페스티벌 프로그래머로,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하는 직업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그리하여 오래된 시간 동안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그래머님의 지난한 시간이 묻어있는 공간, 벨로주 망원에서 만나보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박정용>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피스트레인 프로그래머 박정용입니다. 피스트레인을 처음 만들 때부터 같이 시작했습니다. 또, 벨로주(홍대, 망원)라는 공간을 1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 프로그래머’는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페스티벌 라인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각 페스티벌마다 하는 일이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피스트레인에서 공윤영 예술감독, 김미소 총감독, 이수정 기획국장을 서포트 하는 역할이고요. 페스티벌 콘텐츠들을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조언하기도 하고, 적절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실행합니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에서는 새로운 뮤지션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죠. 공연 기획 외에도 어떤 일을 하시나요?
3-4년 전부터는 음악을 선곡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NOW>에서 재즈, 클래식, 그루브 뮤직 등 하루에 5~6시간 선곡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몇몇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해서 꾸준히 음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멈춰있지만 매월 마지막 주, 홍대에 있는 10개의 라이브 공간들에서 열리는 <라이브 클럽 데이> 를 기획합니다. 결국 음악 선곡과 공연 기획 그리고 홍대를 중심으로 하는 인디 음악과 연관된 일들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벨로주도 한때 오픈을 못 했죠. 여러 페스티벌도 취소되고, 벨로주는 무엇을 하고 지냈나요?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답답한 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어야 한다거나, 할 수 없다거나, 정확히 일정이 정해져 있으면 스케줄을 짤 수 있잖아요. 페스티벌과 공연을 기획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계속 대기하면서 기다려야 하고 기획한 것이 취소되는 그 일련의 불확실한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네요. 그래도 공연장 같은 경우는 팬데믹 과정 속에서 나온 지침에 따라 작은 규모의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긴 했습니다만, 페스티벌들은 아무래도 더 어렵죠.
방역 지침이 생기고 그 전의 공연장 운영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좌석을 한 칸씩 띄어야해 절반밖에 관객을 못 받지만, 그렇다고 입장료를 올리기는 어려운지라 공연을 해도 수익이 없는 상황이죠. 또한 벨로주는 스탠딩 공연과 좌석공연 비율이 반반인데, 지금은 스탠딩 공연을 못 하거든요. 장르적으로는 락 공연이나 일렉트로닉 공연을 하긴 하지만 뭔가 앉아서 헤드뱅잉을 해야 하는 어색한 분위기여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죠.
밖에 많이들 못 나가니까 디깅하는 시간이 느는 거 같아요. 음반 디깅에 예전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음반 구매량은 줄긴 줄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음반으로 구매하고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많이 사고, 찾고, 들었습니다.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 생기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음반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해요. 아마존 뿐 아니라, <Discogs>라는 전 세계 음반 셀러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장터가 있어요. 배송도 빠른 편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셀러가 판매하는 음반을 구매하면 일주일 후에 오기도 하고요, 러시아 셀러, 남미 셀러 등 다양합니다. 귀한 건 물론 비싸지만 대체로 저렴한 편이고요. 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그냥 가는 아주 위험한 사이트죠.
플레이리스트집 <Music For Inner Peace> @벨로주 망원
<Music For Inner Peace>
최근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 <Music For Inner Peace>을 출판하셨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제작과정이 궁금해요.
많은 사랑은 아니에요. (웃음) 일본에는 DJ랑은 조금 다른 ‘선곡가’라는 개념이 있어요. 다양한 매체나 플랫폼에 음악들을 추천하고, 컴필레이션 음반 등을 선곡해 발매하죠. 이처럼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가이드 북을 출판하는 유명한 선곡가들이 있는데요.
출판사겸, 음악기획회사 ‘노웨이브’에서 <콰이어트 코너>라고 유명한 일본 선곡가의 번역서를 내면서 제가 추천사를 쓰게 됐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두 번째 가이드북 제안을 받은 거죠. 우리나라는 앨범 자체는 많이 사지 않기 때문에 앨범(디스크) 가이드북 보다는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이라는 컨셉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앨범을 소개하고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서, QR코드로 듣게 하는 책을 만들게 된거죠. 올해 1, 2월에 써서 3월에 나왔죠.
디깅하는 일상의 시간을 옮긴 거 같아요. 특히나,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들어오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에서 플레이리스트 시대가 됐잖아요. 무엇보다 물성이 느껴져서 좋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내면의 평화를 위한 뮤직이라는 제목도 좋았어요. ‘평화’를 주제로 하는 피스트레인을 염두하고 만드 신건지?(웃음)
같은 피스니까 친척이긴 한데, 주제를 뭐로 할까 고민했는데요. 작년 한 해 팬데믹 때문에 힘들었고, 개인적으로도 평소보다 차분한 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저한테 제일 필요한 게 ‘이너피스’였어요. 시의성을 생각한 거죠. 팬데믹 끝나고는 그때에 어울리는 다른 주제로 책을 내자고(웃음) 나름 비즈니스를 생각한 고민이었죠.
팬데믹을 염두하고 쓰신 책이라고 함은, 원래는 이 책을 쓰실 계획은 없으셨던 거에요?
책을 쓰자고 마음만 먹고 있었죠. 보통 한 두 달 정도 시간을 내는 게 절대 쉽지 않은데, 코로나 19로 여유가 생겨서 쓴 책이니 팬데믹 덕분이기도 하네요.
굿모닝-굿애프터눈-굿이브닝-굿나잇 이라는 하루의 주기를 따라 나는 시간순 선곡 구성이 마치 페스티벌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체감하는 반응은 어떠세요?
대중성을 생각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음악을 골랐지만 그래도 막 대중적인 곡들은 아니에요. 많이 읽힐 책은 아니지만, 제일 좋은 건 “잘 읽었다.” 보다 “잘 듣고 있다.” 라는 말을 많이 해주는데 그게 가장 좋은 칭찬이죠. 그리고 “외국 책 같다”는 반응? 개인적으로 의도한 거라 기뻤죠.(웃음)
선곡 책의 가장 다른 점이겠어요.
그렇죠. 책을 주면서, 잘 읽어주세요가 아니라 잘 들어주세요. 할 수 있으니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1?>
피스트레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프로그래머로서 작년과 올해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요?
어떤 형식과 규모로 치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피스트레인스러운 것을 잊지 않으면서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과연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삶이 계속되는 것 처럼 공연도 페스티벌도 모두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쨌든 이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아직은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정작 드러났을 때 실망할 수도 있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올해와 내년 이후를 이어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게 기대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펜데믹 시대의 페스티벌, 피스트레인에서는 고려하는 게 있을까요?
피스트레인은 음악이 중심이었지만, ‘평화’라는 키워드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가 다르지만,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저는 더더욱 평화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최근 2년 간 사람들이 만나지도 못하고 단절되어있는데, 사실 만나고, 연결되는 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기존 페스티벌처럼 몇만 명이 모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라도 단절되어있던 게 연결되는 기획 의도와 형식이 중요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 하지만, 상황이 너무 불투명해서 아직 어떤 것도 구체화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시대에 페스티벌이 뭐길래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페스티벌이라는게 소모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단순히 확 불태우는 소비가 아니라, 서로의 감성과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는거잖아요. 거기에서 각자가 삶의 영감을 얻어 가는거고요. 저는 지금처럼 단절이 강제된 상황일수록 페스티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펜데믹 상황에서는 방역과 관련해서 새로운 고민과 형식이 필요하겠지만요.
기획자이자 음악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프로그래머님만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식 같은 게 있을까요?
음. 저의 모든 시작은 중,고등학생 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아끼는 친구들에게 테이프에 녹음해서 줄 때의 그 마음 같아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 아끼는 사람에게 주자. 결국 그게 직업의식 아닌가 싶네요 (웃음).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줬다라면, 기획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테이프를 녹음해서 주는거거든요. 플레이리스트 책을 만드는 마음도 마찬가지고.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을 통해서 셀 수 없는 음악을 듣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리즘은 좁거든요. 시티팝 치면 24시간 동안 시티팝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다 듣고 나면 사실 뭘 들었는지 남지 않아요. 정확하게 무엇인지 맥락을 알기가 어려우니 오히려 좁죠. 듣는 것만 듣게되니까. 근데, 알고리즘으로 만날 수 없는 음악들을 기획 혹은 모아서 들려주면 누군가는 인생의 음악을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더 넓어지죠.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예요. 전혀 몰랐던 음악가를 페스티벌에서 만났는데 인생 밴드가 되기도 하고,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모습 속에서 큰 영감을 받기도 하니까요. 결국 제 직업의식과 의미는 어렸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테이프에 음악을 선곡해서 주는 마음이랑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네요.
누구 주셨어요?
너무 많아서…
불특정 다수였네요.
가장 기억나는 건 좋아하던 여선생님. 근데 선생님이 칭찬해주셨어요. “정용아 너 이런 것도 듣니? 라고”(웃음)
음악도 그렇고, 축제도 그렇고, 시간의 예술이고, 준비하는 선물하는 시간을 담아서 주는게, 참 사랑이네요.
그렇죠. 페스티벌은 하루지만 수많은 기획자가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선물하는 거잖아요. 알아주셨으면 좋겠지만. 하여튼(웃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예년과는 다른 상황에서 올해 피스트레인에서 그래도 꼭 보고 싶은 무대가 있을까요?
방역 상황상 장소도 아직 결정이 안 돼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처음 회의할 때부터 분수 무대만큼은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체계화된 페스티벌도 좋지만, 언제부턴가 상업화되지 않은 축제의 자유로움 같은 게 없어졌던건 현실이죠. 그런 상황에서 기획자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축제의 자유로움이 구현되었던 피스트레인의 상징이 분수 무대 였던 거 같아서. 그 바이브가 계속해서 갔으면 좋겠죠. 두 스테이지 사이를 이동하며 분수무대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모두의 마음이 열리는 장소니까요.
올해 피스트레인 아티스트 힌트를 주자면?
진짜로 힌트가 없어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확정되고, 정리될 거 같긴 한데, 지금은 피스트레인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곳에서 진행될지도 미정이 상황이에요. 슬픈 현실이지만 곧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피스트레인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올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페스티벌을 이어간다는 마음이니 관객 분들도 그런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주시고, 내년까지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팬데믹 상황에도 열심히 음악산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쨌든 평생을 살면서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2년을 멈춘, 어쩌면 군대 온 느낌이랄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모두 어렵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책도 더 읽고, 안 듣던 음악도 더 찾아 들었어요. 그렇게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저에게 지금은 제 내면과 직업을 다시 들여다 보는 시기였어요. 한국은 워낙 트렌드가 빨리 바뀌기 때문에, 기획자들은 너무 바쁘고, 쫓기고, 1년이 금방 가잖아요. 오히려 이런 시기에 좀 깊게 자신의 일을 들여다 보고 ‘내가 왜 이 일을 하지?’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돌아보면 저도 그래서 책을 쓸 수 있던 것 같고. 여러모로 깊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생각하고 싶네요. (웃음)
<사랑과 평화를 찾아서>는 릴레이 인터뷰인데요. 다음 인터뷰를 진행할 분께 궁금한 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벨로주 망원
P.S 음악이 아직도 좋으세요?
그러게.. 인생의 짐을 지고 있지. 아직도 디깅하고 있고, 듣는 게 너무 좋고, 음악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아. 가장 순수한 결정체잖아. 나한테 좋은 음악을 누군가한테 선물하는 그 정성이 말이야.
피스트레인 현장에서 같이 듣고 싶은 러브, 피스, 추억에 대한 노래들 by 박정용
Spotify ➡ https://spoti.fi/2WKd7wk
Youtube ➡ https://bit.ly/3zG2R72
박정용 프로그래머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아이폰 녹음기를 끈 뒤 ‘저 음악일 계속해도 될까요?’라고 여쭤봤다. ‘피스트레인 일하면서 피스트레인을 못가봤는데 아직은 애매하지 않냐, 조금은 더 해봐라. 배부른 고민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하며, 다음 인터뷰이님께 연락을 드렸다.
☮ 인터뷰, 글, 사진 | 장채영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Venue | 벨로주 망원
☮ 발행 |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사무국에서 입을 모아 외친 사람은 단연 박정용 프로그래머님이었다. 왜인지 20여 년 넘게 음악 산업에서 계셨던 프로그래머님이라면, 지금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실 것 같았다. 공연장을 운영하는 대표님의 지난 2년의 시간은 어땠을까? 페스티벌 프로그래머로,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하는 직업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그리하여 오래된 시간 동안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그래머님의 지난한 시간이 묻어있는 공간, 벨로주 망원에서 만나보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박정용>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피스트레인 프로그래머 박정용입니다. 피스트레인을 처음 만들 때부터 같이 시작했습니다. 또, 벨로주(홍대, 망원)라는 공간을 1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 프로그래머’는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프로그래머’라고 하면, 페스티벌 라인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데, 각 페스티벌마다 하는 일이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피스트레인에서 공윤영 예술감독, 김미소 총감독, 이수정 기획국장을 서포트 하는 역할이고요. 페스티벌 콘텐츠들을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조언하기도 하고, 적절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실행합니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에서는 새로운 뮤지션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죠. 공연 기획 외에도 어떤 일을 하시나요?
3-4년 전부터는 음악을 선곡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NOW>에서 재즈, 클래식, 그루브 뮤직 등 하루에 5~6시간 선곡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몇몇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해서 꾸준히 음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멈춰있지만 매월 마지막 주, 홍대에 있는 10개의 라이브 공간들에서 열리는 <라이브 클럽 데이> 를 기획합니다. 결국 음악 선곡과 공연 기획 그리고 홍대를 중심으로 하는 인디 음악과 연관된 일들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벨로주도 한때 오픈을 못 했죠. 여러 페스티벌도 취소되고, 벨로주는 무엇을 하고 지냈나요?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답답한 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쉬어야 한다거나, 할 수 없다거나, 정확히 일정이 정해져 있으면 스케줄을 짤 수 있잖아요. 페스티벌과 공연을 기획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계속 대기하면서 기다려야 하고 기획한 것이 취소되는 그 일련의 불확실한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네요. 그래도 공연장 같은 경우는 팬데믹 과정 속에서 나온 지침에 따라 작은 규모의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긴 했습니다만, 페스티벌들은 아무래도 더 어렵죠.
방역 지침이 생기고 그 전의 공연장 운영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좌석을 한 칸씩 띄어야해 절반밖에 관객을 못 받지만, 그렇다고 입장료를 올리기는 어려운지라 공연을 해도 수익이 없는 상황이죠. 또한 벨로주는 스탠딩 공연과 좌석공연 비율이 반반인데, 지금은 스탠딩 공연을 못 하거든요. 장르적으로는 락 공연이나 일렉트로닉 공연을 하긴 하지만 뭔가 앉아서 헤드뱅잉을 해야 하는 어색한 분위기여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죠.
밖에 많이들 못 나가니까 디깅하는 시간이 느는 거 같아요. 음반 디깅에 예전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음반 구매량은 줄긴 줄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음반으로 구매하고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많이 사고, 찾고, 들었습니다.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이 생기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음반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해요. 아마존 뿐 아니라, <Discogs>라는 전 세계 음반 셀러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장터가 있어요. 배송도 빠른 편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셀러가 판매하는 음반을 구매하면 일주일 후에 오기도 하고요, 러시아 셀러, 남미 셀러 등 다양합니다. 귀한 건 물론 비싸지만 대체로 저렴한 편이고요. 보고만 있어도 하루가 그냥 가는 아주 위험한 사이트죠.
플레이리스트집 <Music For Inner Peace> @벨로주 망원
<Music For Inner Peace>
최근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 <Music For Inner Peace>을 출판하셨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제작과정이 궁금해요.
많은 사랑은 아니에요. (웃음) 일본에는 DJ랑은 조금 다른 ‘선곡가’라는 개념이 있어요. 다양한 매체나 플랫폼에 음악들을 추천하고, 컴필레이션 음반 등을 선곡해 발매하죠. 이처럼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 가이드 북을 출판하는 유명한 선곡가들이 있는데요.
출판사겸, 음악기획회사 ‘노웨이브’에서 <콰이어트 코너>라고 유명한 일본 선곡가의 번역서를 내면서 제가 추천사를 쓰게 됐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두 번째 가이드북 제안을 받은 거죠. 우리나라는 앨범 자체는 많이 사지 않기 때문에 앨범(디스크) 가이드북 보다는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이라는 컨셉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앨범을 소개하고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서, QR코드로 듣게 하는 책을 만들게 된거죠. 올해 1, 2월에 써서 3월에 나왔죠.
디깅하는 일상의 시간을 옮긴 거 같아요. 특히나, 스포티파이가 한국에 들어오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에서 플레이리스트 시대가 됐잖아요. 무엇보다 물성이 느껴져서 좋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내면의 평화를 위한 뮤직이라는 제목도 좋았어요. ‘평화’를 주제로 하는 피스트레인을 염두하고 만드 신건지?(웃음)
같은 피스니까 친척이긴 한데, 주제를 뭐로 할까 고민했는데요. 작년 한 해 팬데믹 때문에 힘들었고, 개인적으로도 평소보다 차분한 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저한테 제일 필요한 게 ‘이너피스’였어요. 시의성을 생각한 거죠. 팬데믹 끝나고는 그때에 어울리는 다른 주제로 책을 내자고(웃음) 나름 비즈니스를 생각한 고민이었죠.
팬데믹을 염두하고 쓰신 책이라고 함은, 원래는 이 책을 쓰실 계획은 없으셨던 거에요?
책을 쓰자고 마음만 먹고 있었죠. 보통 한 두 달 정도 시간을 내는 게 절대 쉽지 않은데, 코로나 19로 여유가 생겨서 쓴 책이니 팬데믹 덕분이기도 하네요.
굿모닝-굿애프터눈-굿이브닝-굿나잇 이라는 하루의 주기를 따라 나는 시간순 선곡 구성이 마치 페스티벌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체감하는 반응은 어떠세요?
대중성을 생각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음악을 골랐지만 그래도 막 대중적인 곡들은 아니에요. 많이 읽힐 책은 아니지만, 제일 좋은 건 “잘 읽었다.” 보다 “잘 듣고 있다.” 라는 말을 많이 해주는데 그게 가장 좋은 칭찬이죠. 그리고 “외국 책 같다”는 반응? 개인적으로 의도한 거라 기뻤죠.(웃음)
선곡 책의 가장 다른 점이겠어요.
그렇죠. 책을 주면서, 잘 읽어주세요가 아니라 잘 들어주세요. 할 수 있으니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1?>
피스트레인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프로그래머로서 작년과 올해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요?
어떤 형식과 규모로 치룰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피스트레인스러운 것을 잊지 않으면서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과연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삶이 계속되는 것 처럼 공연도 페스티벌도 모두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쨌든 이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아직은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정작 드러났을 때 실망할 수도 있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올해와 내년 이후를 이어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게 기대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펜데믹 시대의 페스티벌, 피스트레인에서는 고려하는 게 있을까요?
피스트레인은 음악이 중심이었지만, ‘평화’라는 키워드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가 다르지만,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저는 더더욱 평화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최근 2년 간 사람들이 만나지도 못하고 단절되어있는데, 사실 만나고, 연결되는 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기존 페스티벌처럼 몇만 명이 모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라도 단절되어있던 게 연결되는 기획 의도와 형식이 중요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 하지만, 상황이 너무 불투명해서 아직 어떤 것도 구체화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시대에 페스티벌이 뭐길래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페스티벌이라는게 소모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단순히 확 불태우는 소비가 아니라, 서로의 감성과 존재를 확인하고 만나는거잖아요. 거기에서 각자가 삶의 영감을 얻어 가는거고요. 저는 지금처럼 단절이 강제된 상황일수록 페스티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펜데믹 상황에서는 방역과 관련해서 새로운 고민과 형식이 필요하겠지만요.
기획자이자 음악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 프로그래머님만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식 같은 게 있을까요?
음. 저의 모든 시작은 중,고등학생 때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아끼는 친구들에게 테이프에 녹음해서 줄 때의 그 마음 같아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 아끼는 사람에게 주자. 결국 그게 직업의식 아닌가 싶네요 (웃음).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줬다라면, 기획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테이프를 녹음해서 주는거거든요. 플레이리스트 책을 만드는 마음도 마찬가지고.
유튜브에서 알고리즘을 통해서 셀 수 없는 음악을 듣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리즘은 좁거든요. 시티팝 치면 24시간 동안 시티팝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다 듣고 나면 사실 뭘 들었는지 남지 않아요. 정확하게 무엇인지 맥락을 알기가 어려우니 오히려 좁죠. 듣는 것만 듣게되니까. 근데, 알고리즘으로 만날 수 없는 음악들을 기획 혹은 모아서 들려주면 누군가는 인생의 음악을 만날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더 넓어지죠.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예요. 전혀 몰랐던 음악가를 페스티벌에서 만났는데 인생 밴드가 되기도 하고, 그냥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존재하는 모습 속에서 큰 영감을 받기도 하니까요. 결국 제 직업의식과 의미는 어렸을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테이프에 음악을 선곡해서 주는 마음이랑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네요.
누구 주셨어요?
너무 많아서…
불특정 다수였네요.
가장 기억나는 건 좋아하던 여선생님. 근데 선생님이 칭찬해주셨어요. “정용아 너 이런 것도 듣니? 라고”(웃음)
음악도 그렇고, 축제도 그렇고, 시간의 예술이고, 준비하는 선물하는 시간을 담아서 주는게, 참 사랑이네요.
그렇죠. 페스티벌은 하루지만 수많은 기획자가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선물하는 거잖아요. 알아주셨으면 좋겠지만. 하여튼(웃음)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프로그래머 박정용 @벨로주 망원
예년과는 다른 상황에서 올해 피스트레인에서 그래도 꼭 보고 싶은 무대가 있을까요?
방역 상황상 장소도 아직 결정이 안 돼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 처음 회의할 때부터 분수 무대만큼은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체계화된 페스티벌도 좋지만, 언제부턴가 상업화되지 않은 축제의 자유로움 같은 게 없어졌던건 현실이죠. 그런 상황에서 기획자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축제의 자유로움이 구현되었던 피스트레인의 상징이 분수 무대 였던 거 같아서. 그 바이브가 계속해서 갔으면 좋겠죠. 두 스테이지 사이를 이동하며 분수무대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모두의 마음이 열리는 장소니까요.
올해 피스트레인 아티스트 힌트를 주자면?
진짜로 힌트가 없어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확정되고, 정리될 거 같긴 한데, 지금은 피스트레인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곳에서 진행될지도 미정이 상황이에요. 슬픈 현실이지만 곧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피스트레인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올해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페스티벌을 이어간다는 마음이니 관객 분들도 그런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주시고, 내년까지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팬데믹 상황에도 열심히 음악산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쨌든 평생을 살면서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2년을 멈춘, 어쩌면 군대 온 느낌이랄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모두 어렵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책도 더 읽고, 안 듣던 음악도 더 찾아 들었어요. 그렇게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저에게 지금은 제 내면과 직업을 다시 들여다 보는 시기였어요. 한국은 워낙 트렌드가 빨리 바뀌기 때문에, 기획자들은 너무 바쁘고, 쫓기고, 1년이 금방 가잖아요. 오히려 이런 시기에 좀 깊게 자신의 일을 들여다 보고 ‘내가 왜 이 일을 하지?’라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돌아보면 저도 그래서 책을 쓸 수 있던 것 같고. 여러모로 깊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생각하고 싶네요. (웃음)
<사랑과 평화를 찾아서>는 릴레이 인터뷰인데요. 다음 인터뷰를 진행할 분께 궁금한 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벨로주 망원
P.S 음악이 아직도 좋으세요?
그러게.. 인생의 짐을 지고 있지. 아직도 디깅하고 있고, 듣는 게 너무 좋고, 음악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아. 가장 순수한 결정체잖아. 나한테 좋은 음악을 누군가한테 선물하는 그 정성이 말이야.
피스트레인 현장에서 같이 듣고 싶은 러브, 피스, 추억에 대한 노래들 by 박정용
Spotify ➡ https://spoti.fi/2WKd7wk
Youtube ➡ https://bit.ly/3zG2R72
박정용 프로그래머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아이폰 녹음기를 끈 뒤 ‘저 음악일 계속해도 될까요?’라고 여쭤봤다. ‘피스트레인 일하면서 피스트레인을 못가봤는데 아직은 애매하지 않냐, 조금은 더 해봐라. 배부른 고민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하며, 다음 인터뷰이님께 연락을 드렸다.
☮ 인터뷰, 글, 사진 | 장채영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Venue | 벨로주 망원
☮ 발행 |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