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눈부신 평화와 만날 때! /김미소
1년에 2박 3일, 나 역시 오직 그때가 되어야만 피스트레인과 만난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는’ 순간.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평화’가 되는 것을 유일하게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다. 눈부신 실체는, 압박과 피로로 고약하게 버틴 시간을 단박에 잊게 만든다. 이 야박하고 선명한 순간이, 피스트레인을 더 잘하고 싶게 만든다.
2018년, 모든 일이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흘러갔다. 우연한 제안이 페스티벌을 만들게 했고, 우린 그 페스티벌을 ‘피스트레인’이라 이름 붙였다. 곧이어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갑작스러운 평화의 무드에 당사자인 우리도 어리둥절할 만큼 피스트레인은 급물살을 탔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글렌 매트록(Glen Matlock)이 자발적으로 페스티벌에 합류했고, 선망했던 뮤지션이자 기획자인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과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페스티벌 개최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노심초사가 무색할 만큼 강원도 철원에 1만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때, 같은 음악을 듣고 춤추며 느끼는 동질감과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앞뒤 없이 ‘감’에만 기대어 몰아친 3개월이었다.
잠시 흩어졌던 사무국 사람들이 2019년 페스티벌 준비를 위해 다시 모였다.
“그래서, 피스트레인의 평화가 뭔데? 어떤 페스티벌을 만들어 갈 거야?”
페스티벌이 끝나고 반년이 흘러서야, 우린 평화에 대해 물었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저마다의 좁은 식견으로 평화를 규정하려 들기도 했고, 평화라는 모호한 거대담론이 그저 갑갑하기도 했다. 한 달의 시간 끝에 우린 서로 다음을 합의했다.
음악을 통해 평화를 경험할 것.
동시대 평화를 발견하고 탐색할 것.
비상업적이지만 대중친화적일 것.
2019년, 피스트레인이 적절한 시기에 운 좋은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름의 합의된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주제가 있는 라인업 큐레이션, 철원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소특정적 퍼포먼스인 스페셜 프로그램 ‘노동당사 <우정의 무대>’, ‘소이산 <산의 뱃속>’ 지역경제 활성화와 노쇼방지를 위한 예약금제, 평화에 대한 에세이 프로젝트 ‘피스블랭크’가 그러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해 6월, 나는 한 번 더 ‘평화’ 비스름한 것을 목격했다.
2020년, 피스트레인이 3회를 맞이한다. 난 어느새 아침이면 ‘평화’, ‘DMZ’, ‘금강산’ 같은 것들을 검색창에 넣어본다. ‘분쟁’, ‘난민’, ‘젠더’, ‘환경’, ‘혐오’, ‘배제’와 같은 것들이 실린 기사들도 찾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르겠다. 저 원대하고 모호한 것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저것들과 음악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한정된 재원 안에서 저 맥락을 바탕으로 어떤 뮤지션을 발견하고 소개해야 하는지….
모호함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사무국 사람들은 늘 충돌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호한 것을 상상하는 방식도, 내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합의가 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으로 나아가진다.
올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6월 10일(수)~11일(목) 서울 플랫폼창동61에서 사전 프로그램(국제 컨퍼런스, 쇼케이스)을 시작으로, 강원도 철원 고석정 일원에서 12일(금) 전야제, 13일(토)~14일(일) 본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전년도와 같은 형식으로 네 차례에 걸쳐 라인업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WATCH!(선명한 것으로부터), SLAM!(강렬하고 솔직한 에너지), GATHER!(세대, 장르, 국적을 초월하는 다양함), WORLDWIDE BEAT!(세상의 모든 비트)를 주제로 피스트레인과 함께하는 40여 팀의 아티스트가 공개된다. DMZ라는 공간적 특성이 드러나는 스페셜 프로그램도 새롭게 찾아온다. 지난해 우천으로 부득이하게 취소된, 소이산을 직접 오르며 체험하는 판타지극 <산의 뱃속>이 개편되어 돌아온다. ‘군가(軍歌)’를 재맥락화하는 작업을 선보였던 노동당사 프로그램은 ‘노래’로 바통을 이어간다. 노동당사 싱어롱 <함께, 노래>로 동일한 시·공간에서 주어진 노래(가요, 군가, 가곡)를 함께 부르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2018, 2019년 두 번에 걸쳐 스페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월정리역을 대신하여 피스트레인이 새롭게 발견한 국내 최전방의 공간에서의 초현실적 퍼포먼스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피스트레인을 쾌적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차편과 숙박, 현장에서의 운영도 보완하려 한다.
유독, 불안과 걱정이 많을 때이다. 남·북 관계는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던 시기와는 사뭇 다른 국면이다. 북한은 지난 2일 초대형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한반도 밖에서는 한·일 무역 분쟁,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미·이란 충돌, 호주 산불 등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바이러스도 찾아왔다. 급속도로 빠르게 확산하는 혐오와 불안, 의심과 격리, 배제와 추방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겨진 90일, 낙관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하려던 것들을 하면 된다. 예기치 않은 변수들에 좌절하지 말고, 원칙과 소신으로 계획을 고쳐 나가면 된다. 안팎으로 불안하고 모호한 것들이 많은 시절을 지나 6월, 어서 함께 눈부신 평화와 만나자.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는 그 시간, 혐오도 불안도 배제도 없는 그 시간을 위해 열차는 계속 달린다.
☮ Writer | 김미소
| 2018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장을 맡았다. 2019년, 사단법인 피스트레인이 조직되며 현재 법인의 상임이사,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총감독을 맡고 있다. 과거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아시아퍼시픽뮤직미팅(APaMM), 잔다리페스타, 화엄음악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등 축제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건강한 문화예술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많고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기획자가 되길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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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2박 3일, 나 역시 오직 그때가 되어야만 피스트레인과 만난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는’ 순간. 같은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평화’가 되는 것을 유일하게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다. 눈부신 실체는, 압박과 피로로 고약하게 버틴 시간을 단박에 잊게 만든다. 이 야박하고 선명한 순간이, 피스트레인을 더 잘하고 싶게 만든다.
2018년, 모든 일이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흘러갔다. 우연한 제안이 페스티벌을 만들게 했고, 우린 그 페스티벌을 ‘피스트레인’이라 이름 붙였다. 곧이어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갑작스러운 평화의 무드에 당사자인 우리도 어리둥절할 만큼 피스트레인은 급물살을 탔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글렌 매트록(Glen Matlock)이 자발적으로 페스티벌에 합류했고, 선망했던 뮤지션이자 기획자인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과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페스티벌 개최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노심초사가 무색할 만큼 강원도 철원에 1만 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때, 같은 음악을 듣고 춤추며 느끼는 동질감과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앞뒤 없이 ‘감’에만 기대어 몰아친 3개월이었다.
잠시 흩어졌던 사무국 사람들이 2019년 페스티벌 준비를 위해 다시 모였다.
“그래서, 피스트레인의 평화가 뭔데? 어떤 페스티벌을 만들어 갈 거야?”
페스티벌이 끝나고 반년이 흘러서야, 우린 평화에 대해 물었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저마다의 좁은 식견으로 평화를 규정하려 들기도 했고, 평화라는 모호한 거대담론이 그저 갑갑하기도 했다. 한 달의 시간 끝에 우린 서로 다음을 합의했다.
2019년, 피스트레인이 적절한 시기에 운 좋은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름의 합의된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주제가 있는 라인업 큐레이션, 철원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소특정적 퍼포먼스인 스페셜 프로그램 ‘노동당사 <우정의 무대>’, ‘소이산 <산의 뱃속>’ 지역경제 활성화와 노쇼방지를 위한 예약금제, 평화에 대한 에세이 프로젝트 ‘피스블랭크’가 그러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해 6월, 나는 한 번 더 ‘평화’ 비스름한 것을 목격했다.
2020년, 피스트레인이 3회를 맞이한다. 난 어느새 아침이면 ‘평화’, ‘DMZ’, ‘금강산’ 같은 것들을 검색창에 넣어본다. ‘분쟁’, ‘난민’, ‘젠더’, ‘환경’, ‘혐오’, ‘배제’와 같은 것들이 실린 기사들도 찾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르겠다. 저 원대하고 모호한 것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저것들과 음악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한정된 재원 안에서 저 맥락을 바탕으로 어떤 뮤지션을 발견하고 소개해야 하는지….
모호함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사무국 사람들은 늘 충돌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호한 것을 상상하는 방식도, 내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합의가 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으로 나아가진다.
올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6월 10일(수)~11일(목) 서울 플랫폼창동61에서 사전 프로그램(국제 컨퍼런스, 쇼케이스)을 시작으로, 강원도 철원 고석정 일원에서 12일(금) 전야제, 13일(토)~14일(일) 본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전년도와 같은 형식으로 네 차례에 걸쳐 라인업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WATCH!(선명한 것으로부터), SLAM!(강렬하고 솔직한 에너지), GATHER!(세대, 장르, 국적을 초월하는 다양함), WORLDWIDE BEAT!(세상의 모든 비트)를 주제로 피스트레인과 함께하는 40여 팀의 아티스트가 공개된다. DMZ라는 공간적 특성이 드러나는 스페셜 프로그램도 새롭게 찾아온다. 지난해 우천으로 부득이하게 취소된, 소이산을 직접 오르며 체험하는 판타지극 <산의 뱃속>이 개편되어 돌아온다. ‘군가(軍歌)’를 재맥락화하는 작업을 선보였던 노동당사 프로그램은 ‘노래’로 바통을 이어간다. 노동당사 싱어롱 <함께, 노래>로 동일한 시·공간에서 주어진 노래(가요, 군가, 가곡)를 함께 부르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2018, 2019년 두 번에 걸쳐 스페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월정리역을 대신하여 피스트레인이 새롭게 발견한 국내 최전방의 공간에서의 초현실적 퍼포먼스도 준비 중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피스트레인을 쾌적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차편과 숙박, 현장에서의 운영도 보완하려 한다.
유독, 불안과 걱정이 많을 때이다. 남·북 관계는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던 시기와는 사뭇 다른 국면이다. 북한은 지난 2일 초대형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한반도 밖에서는 한·일 무역 분쟁,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미·이란 충돌, 호주 산불 등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바이러스도 찾아왔다. 급속도로 빠르게 확산하는 혐오와 불안, 의심과 격리, 배제와 추방 앞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겨진 90일, 낙관하며 주어진 상황에 맞게 하려던 것들을 하면 된다. 예기치 않은 변수들에 좌절하지 말고, 원칙과 소신으로 계획을 고쳐 나가면 된다. 안팎으로 불안하고 모호한 것들이 많은 시절을 지나 6월, 어서 함께 눈부신 평화와 만나자.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는 그 시간, 혐오도 불안도 배제도 없는 그 시간을 위해 열차는 계속 달린다.
☮ Writer | 김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