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보이는 것은 누구나 제시 할 수 있지만 다 맞출 수는 없죠
/ 피스트레인 그래픽 파트너 장기성(트라이앵글-스튜디오 디렉터)
가장 먼저 만나는 뮤직페스티벌의 얼굴을 디자인을 한다는 것. 마침내 선장이 뽑아 온 깃발을 가지고 지도를 만드는 일과 같다. 여기, 단지 ‘DMZ, 평화, 음악’ 이라는 추상적 키워드로 불특정 다수인 관객들의 시각적 공감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피스트레인 그래픽 파트너 ‘트라이앵글-스튜디오’의 장기성 디렉터를 고양이 ‘아리’와 함께 창의적인 영감의 공기로 가득찬 연남동 스튜디오에서 만나보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그래픽 파트너 '장기성' 디렉터와 고양이 아리 @트라이앵글-스튜디오
<장기성>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연남동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를 운영하고 있는 장기성 디자이너입니다. 2019년 피스트레인 2회차를 준비하는 와중에 요청이 오면서 외부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작업실에서 거의 살고 있죠. 저번 주에 일주일 내내 집에 들어갔더라고요. 10여 년 만에 처음이에요. 너무 좋더라고요. 이게 평화인데.
디렉터님의 취미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수집하셨는지 그리고 요즘은 어떤 것들을 모으시나요?
초등학생 때부터였어요. 우표를 8,000장씩 모으고, 구슬, 레슬링 카드도 몇 박스씩 모으곤 했네요. 지금 작업실로 이사 온 시점인 4년 전부터 의자를 모으고 있어요. 전에 작업실은 좁았거든요. 공간이 넓어지면서 인테리어 요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종종 스튜디오에서 워크숍도 하고, 팬데믹 이전에는 해외에서 학생들도 방문을 오면 수업하곤 했는데요. 가지고 있는 의자가 많아서 편리했죠. (웃음) 그때 이후로 의자의 용도는 100% 눈요기, 자기만족에 쓰이고 있습니다. 작업실 구성원은 몇 명 없는데 의자는 배로 많아요.(웃음)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좋은 의자를 산다고 하더라고요. ‘의자는 매일 앉아서 일하는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중요한 물건이니까’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의자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의자왕입니다. 중의적으로 해석하시면 안 되고, 많은 의자를 가지고 있는 의자왕으로 해석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의자는 저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그래픽 파트너 '장기성' 디렉터와 고양이 아리 @트라이앵글-스튜디오
<트라이앵글-스튜디오 :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마음>
트라이앵글-스튜디오 소개 부탁드려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브랜드의 시각적 요소를 디자인하는 일부터 피스트레인과 같은 페스티벌 그리고 전시 등의 문화예술 관련 그래픽 작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습니다.
1인 스튜디오로 운영하다,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디자이너 두 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제 개인의 정서로 이루어진 일들이 대부분이라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분들의 장점도 살리면서 저희가 가진 색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요. 지금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아가는 중입니다.
가장 처음 했던 일은 무엇이신가요? 전공도 디자인인지, 지금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요. 그러다 졸업 직전에 지금껏 만들었던 일러스트나 아트웍으로 책을 만드는 수업을 들었는데, 진로가 결정됐죠. 너무 재밌더라고요. 책을 구성하는 콘텐츠들도 타인이 아닌 온전히 제 것으로 채우는 것도 좋았고요.
그때 마침 한 속옷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한 달 조금 넘게 다니다 그만두긴 했지만요.(웃음) 그때만 해도 주 5일제가 아니라,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그랬는데 상사가 딱 5분 늦었다고 엄청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하면서 박차고 나와서 프리랜서를 시작했죠. 5-6년 정도 일하면서 자금을 모아 상수동 쪽에 첫 스튜디오를 차리고 지금 연남동에 오게 됐네요.
디자인하기 위한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전공 수업 때 배운 툴이 디자인할 때의 툴과 유사하거든요. 영상 관련 콘텐츠나 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 커리어를 시작해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더라고요. 실질적으로 아웃풋을 내는 방식이나 실무적인 부분의 부족함은 직접 작업을 하면서 부딪혀가면서 배우고 지금의 트라이앵글-스튜디오의 정체성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주로는 화장품부터 생활용품이나 카페나 공간 관련된 브랜딩 작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또 전시나 문화 행사 공공기관 행사부터 개인이 의뢰하는 그래픽 관련 작업도 많이 합니다. 브랜드 디자인 관련된 작업은 전체적인 정체성을 시스템을 잡아 그 안에 나올 수 있는 품목들을 디자인하죠. 패키지, 포스터, 애플리케이션 등을 포함해 최종적인 아웃풋까지 포괄적으로 진행하는 형태입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 중 한 코스메틱 브랜드가 인지도가 높아져서 그 영향으로 향과 관련된 브랜드부터 헤어제품, 치약도 많이 만들고 있고요 되게 재밌게 작업하고 있어요.
커머셜 브랜드부터 문화예술 관련 작업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점을 진행하는 형태에요. 작업을 할 때 한계를 정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녹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피스트레인 이외의 문화 예술 관련해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국악 쪽 작업에 계속 연이 닿아 국악 관련 앨범, 명상 패키지 작업도 했고요. 공연 포스터나 최근에는 개별 팀이나 공연 형태보다는 조금 더 규모가 있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2020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관련된 아이덴티티, 그래픽 작업도 했어요. 엔터 쪽 의뢰가 잦은데, 익히 알고 있는 기획사에서 이전에 몇 번 진행했던 경험이 있어요.
어떤 부분들이 힘드셨을까요?
대부분의 경우가 내부에서 기획 의도와 방향성을 잡고, 잘 풀어낼 수 있는 아웃소싱 할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거죠. 로직을 짜고 시각화를 작업하는데,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의 작업은 그래도 저희의 참여도가 어느 정도 들어가죠. 기획단에 참여하지 않더라고, 결과물들을 가지고 이런 방향으로 풀면 좋지 않을까 의견을 드리죠. 모티브를 잡는 부분이라든지, 내부적으로는 아트디렉터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메시지는 들어가 있는데 시각적인 방향성을 잡을 수 있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못돼요.
그런데 가장 가시적으로 중요하고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작업은 포스터를 비롯한 그래픽 물들이니까, 어쩔 수 없이 유기적인 내용을 주고받죠. 어려워요.
문화예술 관련한 많은 작업이 취소가 됐을 것 같아요. 세보셨나요?
거의 모든 작업이 딜레이됐어요. 브랜드는 런칭시기를 못 잡으면 한없이 홀드 되는 상태라 드랍 되기도 하고, 작년 <여우 락 페스티벌>도 작업 중간에 코로나로 온라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처음부터 온라인인 걸 알았다면 아웃풋의 결이 달랐을 수도 있죠. 인쇄나 출력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색상을 쓸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르고요.
무엇보다 제일 아쉬운 건 피스트레인이죠. 작년에 잘 만들었거든요. 아웃풋이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이것으로 현장을 꾸미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면서 굿즈도 재밌게 만들었는데, 한 번 연기가 되고 그에 대한 콘텐츠를 다시 만들었죠. 쉽지 않았습니다. 아웃풋이 나와야 끝맺음을 맺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무용지물이거든요. 하드에 갇힌 작업물들은 보이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이 제일 아쉬운데 피스트레인이 그렇죠. 진행 중에 축제가 취소되어 너무나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공간이나 음악을 경험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면 좋잖아요. 그런 기회 자체가 더 줄어든 거니까.
@트라이앵글-스튜디오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1?>
피스트레인에 2회 때부터 참여하셨죠. 원래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알고 있으셨나요?
피스트레인은 2회 때부터 참여해서 진행했고, 3회 때는 작업은 다 하였으나 취소가 됐죠. 올해는 한다고 하셔서 추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또 4단계가 발생해서 다시 또 잊어버렸어요. 그때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하지 않을까.
의뢰를 받기 전에는, 정확히는 알지 못했어요. 피스트레인은 그해 진행된 페스티벌 중에 각종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그런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아이덴티티를 잡는 작업을 선행했죠.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느꼈지만, 다행히 아주 만족하시면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피스트레인 하면 매번 다른 상징으로 표현되는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죠. 1회 때 달리는 기차의 시선으로 매회 새롭게 마주한 것들을 키비주얼로 표현하는 과정들이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앞으로 이 기차는 또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도 매번 기대되고 기다려지고요.
피스트레인은 가진 메세지는 분명했지만, 시각적인 방향성은 모호했던 것 같아요. 날 것, 생생함, 자유로움, 피스 같은 (웃음) 전부 시각화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요.
초반에는 피스“트레인”이니까. 기차에 메시지를 담는 데 주력했어요. 2회에는 기찻길이라는 키워드를 잡아 함축적이되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작년 3회차 작업 땐 공간에 대한 무드를 표현해보고자 했어요. DMZ에 피어있는 다양한 야생화, 야생초와 철조망으로 DMZ라는 공간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정하게 됐죠.
매년 디자인이 달라지더라도, 맥락을 이어가는 부분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외의 다양한 페스티벌들을 봤을 때도 무드는 달라지지만, 분명히 유지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들은 존재하잖아요. DMZ가 갖고 가야 하는 무드는 뭘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이 기차가 어디로 나아갈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피스트레인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실 때 혹은 작업이 막힐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세요?
우선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노래를 돌려 들어요. 2회차 작업 때 피스트레인 라인업 아티스트 중 피스Peace라는 영국밴드를 알게 됐는데, 뮤직비디오랑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때 그 밴드의 팬이 되기도 했었어요. 주로 음악 많이 듣고 ,키워드 주신 것 안에서 많이 고민하고 탐색하며, 담배 많이 피고 술 많이 마십니다.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뮤직페스티벌인만큼 음악을 통해 영감을 받고자 시도하는데. 저는 듣는 것보다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옛날 사람이라 락발라드 많이 불렀어요. 토이, 전람회, 임창정 좋아하는 세대입니다. 하드락도 좋아해서 메탈리카 엄청 좋아했어요.
무엇보다 소비합니다. 물욕이 최고죠. 의자를 산다든지, 노력한 것들에 대해 실제 물성이 있는 것들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크더라고요. 의자는 날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런 느낌도있고, 저도 창작요소를 만드는 사람이니, 다른 사람들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존중과 함게 영감을 얻기 위해 브랜드를 경험하고 소비해보려고 해요. 처음 보거나 내가 써보지 못한 것들. 실제론 어떤지 직접 경험해봐야 이해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경험하려는 단계를 넘어 그냥 좋아서 삽니다. 물욕이 주는 기쁨이 무척 크죠.
서울에서 철원까지 택시를 타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현장에 구현된 작업물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
제 작업물들이 현장에 적용된 모습들은 분명히 제게 의미가 있었어요. 현장에는 2회 때 처음 참여했었는데, 일이 한참 많을 때라 새벽 2시쯤 택시를 잡아서 갔어요. 중간에 휴게소에서 택시기사님이랑 커피도 마시고 하다 보니 한 시간정도 걸려 금방 도착하더라고요. 다음날 맑은 날씨와 함께 밖을 나서 만나보니 현장 되게 이쁘게 잘 꾸며놓으셨더라고요. 준비하고 세팅하는 과정들도 다 보기도 했어가지고, 재밌게 봤어요.
또 1회차 피스트레인에 관해 이야기와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상상하다가 직접 현장에서 겪은 피스트레인만의 현장감들은 분명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인상을 줬던 거 같아요. 사이트 안에 무슨 분수대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고. 셔틀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고, 젊은 친구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도 많고. 저 또한 현장에서 만큼은 관객이 되어 너무 재밌게 페스티벌을 즐겼어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그냥 재밌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상황들이 그렇게 녹록지 않아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재밌게 사려고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동기부여가 돼서 움직일 수 있는 요소들이 되기도 하니까요. 재밌게 사세요.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2019 현장
P.S 평화라는 단어가 모호하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무엇을 연상하셨나요? 평화란 무엇일지요.
평화의 기준이라고 함은 나이마다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계속 바뀌니까요. 지금 40대를 시작하는 나이에서 저의 20대 가치관을 바라보면 분명 다르거든요. 기준점들이 옮겨졌기에, 예전 같으면 열심히 같이 술 마시는 게 평화가 아닐까 생각했을 거에요. 워낙 지인들이랑 어울리고 술 마시고 놀고 하는 걸 좋아해서.
지금은 그냥 평온해졌으면 좋겠어요. 평화와 평온은 다르잖아요. 늘 뭔가 상기되어있고 불안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해킹을 당해서 재산이 사라졌어요. 이 세상에 악인이 너무 많아요. 그런 제 평온을 방해하는 빌런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그런 요소들이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심적인 거든 시각적인 거든, 여러 가지 평화가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오십견인가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팔이 너무 저려요. 오롯이 제가 목표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 평온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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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 https://bit.ly/3AKtb0o
페스티벌을 가기 전, 설레는 순간이 많지만 가장 두근거리는 때는 포스터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한껏 기대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래픽 디자인. 그 너머의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떻게 모호한 개념들을 그래픽으로 시각화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시킬 수 있었을지. 그 과정은 마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길에서 방황하는 우리처럼 느껴지기도 해, 답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결국 평화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 그려졌다. 마침내 사랑과 평화를 찾으며, 마지막 인터뷰이님께 연락을 드렸다.
☮ 인터뷰, 글, 사진 | 장채영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인터뷰, 글 | 신지수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Venue | 트라이앵글-스튜디오
☮ 발행 |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나는 뮤직페스티벌의 얼굴을 디자인을 한다는 것. 마침내 선장이 뽑아 온 깃발을 가지고 지도를 만드는 일과 같다. 여기, 단지 ‘DMZ, 평화, 음악’ 이라는 추상적 키워드로 불특정 다수인 관객들의 시각적 공감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피스트레인 그래픽 파트너 ‘트라이앵글-스튜디오’의 장기성 디렉터를 고양이 ‘아리’와 함께 창의적인 영감의 공기로 가득찬 연남동 스튜디오에서 만나보았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그래픽 파트너 '장기성' 디렉터와 고양이 아리 @트라이앵글-스튜디오
<장기성>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연남동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를 운영하고 있는 장기성 디자이너입니다. 2019년 피스트레인 2회차를 준비하는 와중에 요청이 오면서 외부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여러 작업을 진행하고, 작업실에서 거의 살고 있죠. 저번 주에 일주일 내내 집에 들어갔더라고요. 10여 년 만에 처음이에요. 너무 좋더라고요. 이게 평화인데.
디렉터님의 취미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수집하셨는지 그리고 요즘은 어떤 것들을 모으시나요?
초등학생 때부터였어요. 우표를 8,000장씩 모으고, 구슬, 레슬링 카드도 몇 박스씩 모으곤 했네요. 지금 작업실로 이사 온 시점인 4년 전부터 의자를 모으고 있어요. 전에 작업실은 좁았거든요. 공간이 넓어지면서 인테리어 요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종종 스튜디오에서 워크숍도 하고, 팬데믹 이전에는 해외에서 학생들도 방문을 오면 수업하곤 했는데요. 가지고 있는 의자가 많아서 편리했죠. (웃음) 그때 이후로 의자의 용도는 100% 눈요기, 자기만족에 쓰이고 있습니다. 작업실 구성원은 몇 명 없는데 의자는 배로 많아요.(웃음)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좋은 의자를 산다고 하더라고요. ‘의자는 매일 앉아서 일하는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중요한 물건이니까’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의자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의자왕입니다. 중의적으로 해석하시면 안 되고, 많은 의자를 가지고 있는 의자왕으로 해석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 의자는 저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그래픽 파트너 '장기성' 디렉터와 고양이 아리 @트라이앵글-스튜디오
<트라이앵글-스튜디오 :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마음>
트라이앵글-스튜디오 소개 부탁드려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브랜드의 시각적 요소를 디자인하는 일부터 피스트레인과 같은 페스티벌 그리고 전시 등의 문화예술 관련 그래픽 작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습니다.
1인 스튜디오로 운영하다, 더 큰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디자이너 두 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제 개인의 정서로 이루어진 일들이 대부분이라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분들의 장점도 살리면서 저희가 가진 색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요. 지금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아가는 중입니다.
가장 처음 했던 일은 무엇이신가요? 전공도 디자인인지, 지금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요. 그러다 졸업 직전에 지금껏 만들었던 일러스트나 아트웍으로 책을 만드는 수업을 들었는데, 진로가 결정됐죠. 너무 재밌더라고요. 책을 구성하는 콘텐츠들도 타인이 아닌 온전히 제 것으로 채우는 것도 좋았고요.
그때 마침 한 속옷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한 달 조금 넘게 다니다 그만두긴 했지만요.(웃음) 그때만 해도 주 5일제가 아니라,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그랬는데 상사가 딱 5분 늦었다고 엄청 뭐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 하면서 박차고 나와서 프리랜서를 시작했죠. 5-6년 정도 일하면서 자금을 모아 상수동 쪽에 첫 스튜디오를 차리고 지금 연남동에 오게 됐네요.
디자인하기 위한 정규 교육 과정을 밟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전공 수업 때 배운 툴이 디자인할 때의 툴과 유사하거든요. 영상 관련 콘텐츠나 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 커리어를 시작해보니, 모르는 것 투성이더라고요. 실질적으로 아웃풋을 내는 방식이나 실무적인 부분의 부족함은 직접 작업을 하면서 부딪혀가면서 배우고 지금의 트라이앵글-스튜디오의 정체성까지 오게 된 거 같아요.
요즘에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주로는 화장품부터 생활용품이나 카페나 공간 관련된 브랜딩 작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또 전시나 문화 행사 공공기관 행사부터 개인이 의뢰하는 그래픽 관련 작업도 많이 합니다. 브랜드 디자인 관련된 작업은 전체적인 정체성을 시스템을 잡아 그 안에 나올 수 있는 품목들을 디자인하죠. 패키지, 포스터, 애플리케이션 등을 포함해 최종적인 아웃풋까지 포괄적으로 진행하는 형태입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 중 한 코스메틱 브랜드가 인지도가 높아져서 그 영향으로 향과 관련된 브랜드부터 헤어제품, 치약도 많이 만들고 있고요 되게 재밌게 작업하고 있어요.
커머셜 브랜드부터 문화예술 관련 작업 등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점을 진행하는 형태에요. 작업을 할 때 한계를 정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녹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피스트레인 이외의 문화 예술 관련해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국악 쪽 작업에 계속 연이 닿아 국악 관련 앨범, 명상 패키지 작업도 했고요. 공연 포스터나 최근에는 개별 팀이나 공연 형태보다는 조금 더 규모가 있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2020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관련된 아이덴티티, 그래픽 작업도 했어요. 엔터 쪽 의뢰가 잦은데, 익히 알고 있는 기획사에서 이전에 몇 번 진행했던 경험이 있어요.
어떤 부분들이 힘드셨을까요?
대부분의 경우가 내부에서 기획 의도와 방향성을 잡고, 잘 풀어낼 수 있는 아웃소싱 할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거죠. 로직을 짜고 시각화를 작업하는데,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의 작업은 그래도 저희의 참여도가 어느 정도 들어가죠. 기획단에 참여하지 않더라고, 결과물들을 가지고 이런 방향으로 풀면 좋지 않을까 의견을 드리죠. 모티브를 잡는 부분이라든지, 내부적으로는 아트디렉터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메시지는 들어가 있는데 시각적인 방향성을 잡을 수 있는 구조는 현실적으로 못돼요.
그런데 가장 가시적으로 중요하고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작업은 포스터를 비롯한 그래픽 물들이니까, 어쩔 수 없이 유기적인 내용을 주고받죠. 어려워요.
문화예술 관련한 많은 작업이 취소가 됐을 것 같아요. 세보셨나요?
거의 모든 작업이 딜레이됐어요. 브랜드는 런칭시기를 못 잡으면 한없이 홀드 되는 상태라 드랍 되기도 하고, 작년 <여우 락 페스티벌>도 작업 중간에 코로나로 온라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처음부터 온라인인 걸 알았다면 아웃풋의 결이 달랐을 수도 있죠. 인쇄나 출력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색상을 쓸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했을지도 모르고요.
무엇보다 제일 아쉬운 건 피스트레인이죠. 작년에 잘 만들었거든요. 아웃풋이 굉장히 만족스러웠고, 이것으로 현장을 꾸미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면서 굿즈도 재밌게 만들었는데, 한 번 연기가 되고 그에 대한 콘텐츠를 다시 만들었죠. 쉽지 않았습니다. 아웃풋이 나와야 끝맺음을 맺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무용지물이거든요. 하드에 갇힌 작업물들은 보이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이 제일 아쉬운데 피스트레인이 그렇죠. 진행 중에 축제가 취소되어 너무나 아쉬웠어요.
아무래도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이 공간이나 음악을 경험하고 결과물을 공유하면 좋잖아요. 그런 기회 자체가 더 줄어든 거니까.
@트라이앵글-스튜디오
<DMZ PEACETRAIN MUSIC FESTIVAL 2021?>
피스트레인에 2회 때부터 참여하셨죠. 원래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알고 있으셨나요?
피스트레인은 2회 때부터 참여해서 진행했고, 3회 때는 작업은 다 하였으나 취소가 됐죠. 올해는 한다고 하셔서 추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또 4단계가 발생해서 다시 또 잊어버렸어요. 그때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하지 않을까.
의뢰를 받기 전에는, 정확히는 알지 못했어요. 피스트레인은 그해 진행된 페스티벌 중에 각종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그런 기본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아이덴티티를 잡는 작업을 선행했죠.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느꼈지만, 다행히 아주 만족하시면서 계속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피스트레인 하면 매번 다른 상징으로 표현되는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죠. 1회 때 달리는 기차의 시선으로 매회 새롭게 마주한 것들을 키비주얼로 표현하는 과정들이 무척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앞으로 이 기차는 또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도 매번 기대되고 기다려지고요.
피스트레인은 가진 메세지는 분명했지만, 시각적인 방향성은 모호했던 것 같아요. 날 것, 생생함, 자유로움, 피스 같은 (웃음) 전부 시각화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요.
초반에는 피스“트레인”이니까. 기차에 메시지를 담는 데 주력했어요. 2회에는 기찻길이라는 키워드를 잡아 함축적이되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작년 3회차 작업 땐 공간에 대한 무드를 표현해보고자 했어요. DMZ에 피어있는 다양한 야생화, 야생초와 철조망으로 DMZ라는 공간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정하게 됐죠.
매년 디자인이 달라지더라도, 맥락을 이어가는 부분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외의 다양한 페스티벌들을 봤을 때도 무드는 달라지지만, 분명히 유지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들은 존재하잖아요. DMZ가 갖고 가야 하는 무드는 뭘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이 기차가 어디로 나아갈지는 저도 궁금하네요.
피스트레인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실 때 혹은 작업이 막힐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세요?
우선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노래를 돌려 들어요. 2회차 작업 때 피스트레인 라인업 아티스트 중 피스Peace라는 영국밴드를 알게 됐는데, 뮤직비디오랑 음악이 너무 좋아서 그때 그 밴드의 팬이 되기도 했었어요. 주로 음악 많이 듣고 ,키워드 주신 것 안에서 많이 고민하고 탐색하며, 담배 많이 피고 술 많이 마십니다.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뮤직페스티벌인만큼 음악을 통해 영감을 받고자 시도하는데. 저는 듣는 것보다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옛날 사람이라 락발라드 많이 불렀어요. 토이, 전람회, 임창정 좋아하는 세대입니다. 하드락도 좋아해서 메탈리카 엄청 좋아했어요.
무엇보다 소비합니다. 물욕이 최고죠. 의자를 산다든지, 노력한 것들에 대해 실제 물성이 있는 것들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크더라고요. 의자는 날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런 느낌도있고, 저도 창작요소를 만드는 사람이니, 다른 사람들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존중과 함게 영감을 얻기 위해 브랜드를 경험하고 소비해보려고 해요. 처음 보거나 내가 써보지 못한 것들. 실제론 어떤지 직접 경험해봐야 이해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경험하려는 단계를 넘어 그냥 좋아서 삽니다. 물욕이 주는 기쁨이 무척 크죠.
서울에서 철원까지 택시를 타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현장에 구현된 작업물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
제 작업물들이 현장에 적용된 모습들은 분명히 제게 의미가 있었어요. 현장에는 2회 때 처음 참여했었는데, 일이 한참 많을 때라 새벽 2시쯤 택시를 잡아서 갔어요. 중간에 휴게소에서 택시기사님이랑 커피도 마시고 하다 보니 한 시간정도 걸려 금방 도착하더라고요. 다음날 맑은 날씨와 함께 밖을 나서 만나보니 현장 되게 이쁘게 잘 꾸며놓으셨더라고요. 준비하고 세팅하는 과정들도 다 보기도 했어가지고, 재밌게 봤어요.
또 1회차 피스트레인에 관해 이야기와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상상하다가 직접 현장에서 겪은 피스트레인만의 현장감들은 분명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인상을 줬던 거 같아요. 사이트 안에 무슨 분수대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고. 셔틀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고, 젊은 친구들부터 나이 드신 분들도 많고. 저 또한 현장에서 만큼은 관객이 되어 너무 재밌게 페스티벌을 즐겼어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요?
그냥 재밌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상황들이 그렇게 녹록지 않아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재밌게 사려고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동기부여가 돼서 움직일 수 있는 요소들이 되기도 하니까요. 재밌게 사세요.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2019 현장
P.S 평화라는 단어가 모호하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 무엇을 연상하셨나요? 평화란 무엇일지요.
평화의 기준이라고 함은 나이마다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계속 바뀌니까요. 지금 40대를 시작하는 나이에서 저의 20대 가치관을 바라보면 분명 다르거든요. 기준점들이 옮겨졌기에, 예전 같으면 열심히 같이 술 마시는 게 평화가 아닐까 생각했을 거에요. 워낙 지인들이랑 어울리고 술 마시고 놀고 하는 걸 좋아해서.
지금은 그냥 평온해졌으면 좋겠어요. 평화와 평온은 다르잖아요. 늘 뭔가 상기되어있고 불안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해킹을 당해서 재산이 사라졌어요. 이 세상에 악인이 너무 많아요. 그런 제 평온을 방해하는 빌런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그런 요소들이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심적인 거든 시각적인 거든, 여러 가지 평화가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오십견인가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팔이 너무 저려요. 오롯이 제가 목표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 없어서 평온을 꿈꿉니다.
Spotify ➡ https://spoti.fi/3uakv0t
Youtube ➡ https://bit.ly/3AKtb0o
페스티벌을 가기 전, 설레는 순간이 많지만 가장 두근거리는 때는 포스터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한껏 기대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래픽 디자인. 그 너머의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떻게 모호한 개념들을 그래픽으로 시각화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공감시킬 수 있었을지. 그 과정은 마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앞으로의 길에서 방황하는 우리처럼 느껴지기도 해, 답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결국 평화의 기준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이 그려졌다. 마침내 사랑과 평화를 찾으며, 마지막 인터뷰이님께 연락을 드렸다.
☮ 인터뷰, 글, 사진 | 장채영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인터뷰, 글 | 신지수 (피스트레인 콘텐츠 매니저)
☮ Venue | 트라이앵글-스튜디오
☮ 발행 |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