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밤을 패고, 시간을 쪼개가며 마감을 하던 중 편집장님으로부터 하나의 URL이 도착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관련 기사였다. 이북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편집장님은 평소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음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철원에서 처음 펼쳐질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곤 그녀는 관심과 기대감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바빠 죽겠는데, 웬 뮤직 페스티벌?’ 시큰둥한 내 반응을 감지한 편집장님은, ‘문화 잡지 기자라면 오히려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얼마나 찬란한 문화가 꽃피겠는가’라는 말로 나에게 조금씩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펑크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의 페스티벌 참가와 조선펑크 창시자들인 차승우와 크라잉넛과의 합주가 펼쳐질 것이다’라는 말로 나를 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의 35년 인생 8할 이상을 책임져준 것은 다름 아닌 펑크록이었다. 학창시절, ‘의정부 양아치 슬램단’이라는 클랜을 만들어 이곳저곳 사생팬처럼 펑크 밴드들을 따라다녔다. 내가 이토록 일찍(?) 애늙은이가 된 이유도 그 시절 이미 내 청춘의 불꽃을 모두 태워버려 더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는가. 편집장님의 강력한 의지가 나를 굴복시켰다. 펑크록 공연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겉으론 시큰둥한 양상으로 나는 편집부 일행과 함께 고석정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초여름의 한낮 무척이나 무더웠던 날이었음에도 고석정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선 짜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의 표정에선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묻어났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울려 퍼지는 음악가들의 공연에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기 시작했고, 이내 인파 속에 섞여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차승우, 크라잉넛과 글렌 매트록의 등장이 가까워질수록 이미 다 타버리고 없는 줄 알았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이윽고 큰 무대 앞 너른 잔디밭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글렌 매트록의 등장이었다. 그는 달랑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무대에 섰지만, 관록의 무대 매너로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사실 섹스 피스톨스의 글렌 매트록과 차승우, 크라잉넛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문제 될 건 없는 듯 보였다. 그들의 합주는 처음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매끄럽고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염원하던 평화 그리고 자유라는 것도 이렇게 공기처럼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과 외침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연신 ‘닥쳐!’를 외쳐대며 말 달렸던 나는, 그 미친 슬램판에서 젊은 펑크키드들에게 무단 폭격(?)을 당하면서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합주는 나를 십수 년 전, 체인과 안전핀으로 중무장하고 홍대 <드럭>과 <스컹크 헬> 등을 전전하며 활화산처럼 청춘의 불꽃을 불태우던 펑크키드 시절로 되돌려놓기 충분했다. 평소 편집부 내 ‘신영배 무감정설’ 루머가 흉흉하게 나돌았을 정도로 무뚝뚝하던 나였기에, 그날의 동공 풀린 내 모습에 편집부 인원 모두 경악과 탄성(?)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
크라잉넛 <룩셈부르크> 신영배 기자 슬램 동영상 (촬영: PAPER 정유희 편집장)
자, 이쯤에서 작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후기는 마무리하고, 우리가 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경험해야 하는지 이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페스티벌을 체험하게 전엔 ‘철원’이라는 지역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면, 한국전쟁 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백마고지, 입대를 앞둔 남성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는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노동당사 등이 우선으로 떠올랐다. 철원군민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쟁, 군인, 탱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어딘가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의 고장이 바로 철원이었다. 그런 곳에 반전(反戰)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은 실로 뜻깊은 일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앞으로 철원을 전쟁, 철조망, 군부대 등으로 기억하기보다 음악과 문화예술 그리고 평화의 고장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오는 6월, 우리 고석정에서 만나자. 철원은 이 페스티벌 하나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어다.
두 번째로는 너무나 많은 문화 행사들이 수도권과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점으로 볼 때, 강원도 철원에서 펼쳐지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갖는 의미도 분명 크다. 바다가 인접한 영동지방의 몇몇 관광 도시를 제외하면, 강원도는 문화 소외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원도 철원에 매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같은 큰 규모와 진정성, 높은 함량과 의미를 두루 갖춘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는 점은, 지방 문화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철원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들불처럼 평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우린 조금 더 빠르게 저 철옹성과도 같은 철조망을 걷어내고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타 다른 뮤직 페스티벌의 2일 혹은 3일 공연을 모두 경험하려면 약 2~30여만 원의 티켓 비용이 필요하다. 어디 그것뿐인가. 숙박과 식사 그리고 시원한 맥주라도 들이키려면 약 4~50만 원의 큰 비용이 금세 날아간다. 그러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경우, 첫 회 때 사전 예약에 성공한 사람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고, 올해는 노쇼(No-Show) 방지를 위해 소정의 예약금(이는 입장 시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받을 수 있고 페스티벌장 및 철원군 내 제휴 업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을 지불하면 이 멋진 뮤직 페스티벌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강원도와 철원군의 재정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은 비용으로 이렇게 함량 높은 뮤직 페스티벌을 껴안을 수 있다는 점은, 주머니 얇은 청춘들, 그러나 음악 열정만큼은 두터운 젊은 청춘들에게 최고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애정하는 솔직하고도 실질적인 이유 되겠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그 두 번째 시작이 목전이다. 시작에 앞서 앞으로도 이런 멋진 양상들이 계속 유지되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되길 이 지면을 빌려 바라는 바이다. 또한, 이 축제가 음악에 국한된 축제가 아닌 더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예술 축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자, 우리 철원 고석정에서 한마음으로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노래하고 건배하자. 그리고 이윽고 음악과 함께 도래할 평화와 자유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자.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18에 함께 참여한 PAPER 편집부 일원들의 단체 사진 (사진 제공: 신영배)
☮ Writer | 신영배
Magazine PAPER와 월간 <해피투데이> 기자. 또 MAYDAY GRAPHIC STUDIO 기획팀에서 자연과 닮은 감성을 지닌 기획과 디자인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작년 이맘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밤을 패고, 시간을 쪼개가며 마감을 하던 중 편집장님으로부터 하나의 URL이 도착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관련 기사였다. 이북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편집장님은 평소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음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철원에서 처음 펼쳐질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곤 그녀는 관심과 기대감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바빠 죽겠는데, 웬 뮤직 페스티벌?’ 시큰둥한 내 반응을 감지한 편집장님은, ‘문화 잡지 기자라면 오히려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얼마나 찬란한 문화가 꽃피겠는가’라는 말로 나에게 조금씩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펑크록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섹스 피스톨즈의 전설의 베이시스트 글렌 매트록의 페스티벌 참가와 조선펑크 창시자들인 차승우와 크라잉넛과의 합주가 펼쳐질 것이다’라는 말로 나를 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의 35년 인생 8할 이상을 책임져준 것은 다름 아닌 펑크록이었다. 학창시절, ‘의정부 양아치 슬램단’이라는 클랜을 만들어 이곳저곳 사생팬처럼 펑크 밴드들을 따라다녔다. 내가 이토록 일찍(?) 애늙은이가 된 이유도 그 시절 이미 내 청춘의 불꽃을 모두 태워버려 더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는가. 편집장님의 강력한 의지가 나를 굴복시켰다. 펑크록 공연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겉으론 시큰둥한 양상으로 나는 편집부 일행과 함께 고석정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초여름의 한낮 무척이나 무더웠던 날이었음에도 고석정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선 짜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의 표정에선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묻어났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울려 퍼지는 음악가들의 공연에 처음엔 고개를 끄덕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기 시작했고, 이내 인파 속에 섞여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차승우, 크라잉넛과 글렌 매트록의 등장이 가까워질수록 이미 다 타버리고 없는 줄 알았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이윽고 큰 무대 앞 너른 잔디밭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글렌 매트록의 등장이었다. 그는 달랑 통기타 하나 둘러매고 무대에 섰지만, 관록의 무대 매너로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사실 섹스 피스톨스의 글렌 매트록과 차승우, 크라잉넛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문제 될 건 없는 듯 보였다. 그들의 합주는 처음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매끄럽고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염원하던 평화 그리고 자유라는 것도 이렇게 공기처럼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과 외침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연신 ‘닥쳐!’를 외쳐대며 말 달렸던 나는, 그 미친 슬램판에서 젊은 펑크키드들에게 무단 폭격(?)을 당하면서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의 합주는 나를 십수 년 전, 체인과 안전핀으로 중무장하고 홍대 <드럭>과 <스컹크 헬> 등을 전전하며 활화산처럼 청춘의 불꽃을 불태우던 펑크키드 시절로 되돌려놓기 충분했다. 평소 편집부 내 ‘신영배 무감정설’ 루머가 흉흉하게 나돌았을 정도로 무뚝뚝하던 나였기에, 그날의 동공 풀린 내 모습에 편집부 인원 모두 경악과 탄성(?)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
크라잉넛 <룩셈부르크> 신영배 기자 슬램 동영상 (촬영: PAPER 정유희 편집장)
자, 이쯤에서 작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후기는 마무리하고, 우리가 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경험해야 하는지 이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페스티벌을 체험하게 전엔 ‘철원’이라는 지역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면, 한국전쟁 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백마고지, 입대를 앞둔 남성들에게 두려움의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는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노동당사 등이 우선으로 떠올랐다. 철원군민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쟁, 군인, 탱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어딘가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의 고장이 바로 철원이었다. 그런 곳에 반전(反戰)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것은 실로 뜻깊은 일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이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앞으로 철원을 전쟁, 철조망, 군부대 등으로 기억하기보다 음악과 문화예술 그리고 평화의 고장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그러니 속는 셈 치고, 오는 6월, 우리 고석정에서 만나자. 철원은 이 페스티벌 하나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어다.
두 번째로는 너무나 많은 문화 행사들이 수도권과 서울에 집중돼 있다는 점으로 볼 때, 강원도 철원에서 펼쳐지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갖는 의미도 분명 크다. 바다가 인접한 영동지방의 몇몇 관광 도시를 제외하면, 강원도는 문화 소외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강원도 철원에 매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같은 큰 규모와 진정성, 높은 함량과 의미를 두루 갖춘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는 점은, 지방 문화의 저변 확대 측면에서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철원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들불처럼 평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우린 조금 더 빠르게 저 철옹성과도 같은 철조망을 걷어내고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세 번째 이유가 있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존재한다. 그러나 여타 다른 뮤직 페스티벌의 2일 혹은 3일 공연을 모두 경험하려면 약 2~30여만 원의 티켓 비용이 필요하다. 어디 그것뿐인가. 숙박과 식사 그리고 시원한 맥주라도 들이키려면 약 4~50만 원의 큰 비용이 금세 날아간다. 그러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경우, 첫 회 때 사전 예약에 성공한 사람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고, 올해는 노쇼(No-Show) 방지를 위해 소정의 예약금(이는 입장 시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돌려받을 수 있고 페스티벌장 및 철원군 내 제휴 업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을 지불하면 이 멋진 뮤직 페스티벌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강원도와 철원군의 재정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은 비용으로 이렇게 함량 높은 뮤직 페스티벌을 껴안을 수 있다는 점은, 주머니 얇은 청춘들, 그러나 음악 열정만큼은 두터운 젊은 청춘들에게 최고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애정하는 솔직하고도 실질적인 이유 되겠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그 두 번째 시작이 목전이다. 시작에 앞서 앞으로도 이런 멋진 양상들이 계속 유지되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되길 이 지면을 빌려 바라는 바이다. 또한, 이 축제가 음악에 국한된 축제가 아닌 더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예술 축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자, 우리 철원 고석정에서 한마음으로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노래하고 건배하자. 그리고 이윽고 음악과 함께 도래할 평화와 자유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자.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18에 함께 참여한 PAPER 편집부 일원들의 단체 사진 (사진 제공: 신영배)
☮ Writer | 신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