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er wollte nur die Freiheit.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 문아영
2020-06-15
...er wollte nur die Freiheit.(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 문아영
2013년 9월 한 남성이 임진강 지류 탄포천에 설치된 철책을 넘어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헤엄을 쳐서 북한으로 가고자 했고 초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남(南)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던 그는 수백 발의 사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 정치적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추방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왜 북한으로 가고자 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군으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반응과 살인행위이며 과잉대응이라는 비판이 함께 있었다. 당시 총격을 가했던 초소의 초병들은 그 사건 이후 포상을 받았다.
분단이란 무엇인가. 폭이 약 8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임진강을 채 건너지 못하고 수백 발의 총격으로 사망해야 했던 그에게 분단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그의 몸이 물 위로 떠 올랐을 때, 그의 몸엔 스티로폼이 매여있었고 비상식량처럼 보이는 과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개개인들이 선택한 적 없는 전쟁과 역시나 선택한 적 없는 분단으로 인해 가고 싶은 땅에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없게 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그의 죽음을 접하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이름은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 친구와 함께 서독으로 넘어가던 중 동독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10대 후반의 청년이다. 페터는 담을 넘던 중, 고관절 근처에 총격을 받아 동독과 서독 사이의 무인지대로 추락했고 한 시간 가까이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동독군에 의해 수습되었고, 그의 죽음은 서독의 큰 시위로 이어졌으며 이후 그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 다른 공간, 다른 시간, 그러나 닮아 있는 죽음. 하지만 죽음이 기억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베를린에는 페터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있지만, 임진강에서 죽은 그를 기억하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페터 페히터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독군인들 ⓒ Guardian
강을 건너 북한으로 가고자 했던 그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 사람의 사연에 대해 공개된 내용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의 사연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당시 국방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중지하라는 육성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월북하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을 사살 조치했으며 휴대한 여권을 통해 40대의 남모 씨임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 게시물에 국가안보 기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사살은 정당하며 월북하려는 빨갱이에게 인권이 어디 있느냐는 입장과 더불어 사살 명령을 수행한 일반 병사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심리적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댓글들을 남겼다.
그의 죽음은 애도 받을 수 없는 죽음이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빨갱이였을까? 빨갱이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그 단어가 그를 지칭하는 표현이 맞다고 한들 그의 죽음은 애도 될 수 없는 죽음인 것인가? 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의 살 권리는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 맞는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단이란 무엇일까?
임진강 ⓒ Kim Doo Ho
물리적인 분단은 그 분리를 확증하는 ‘경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경계’를 강조하는 방식은 ‘국가안보’라고 하는 공동의 목표를 기반으로 ‘경계 너머의 적’을 상정했다. 경계 너머의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자 ‘분단’은 더욱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고 그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이들은 ‘내부의 적’이 되었다. 그렇게 ‘분단’은 한국사회의 외부의 ‘적’과 내부의 ‘빨갱이’를 만들어내면서 자기검열과 상호검열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러한 자기검열과 자기분열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내부의 불안을 일괄 해소할 수 있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것, 나와 적 사이의 명확한 선을 긋고 거리를 둠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명확한 선이라는 건 불가능한 기획이며, 번번이 미끄러지는 이 기획을 붙들기 위해 필요했던 건 스스로의 순수함, 즉, ‘불순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여전히 그 선을 넘지 못한다. 불순함의 상징으로 굳어진 금단선 너머를 연결하고 넘나드는 일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아, 그 선을 언제쯤 넘을 수 있을까.
그를 겨눈 총구 뒤의 20대의 남성들과 그 총에 맞아 숨진 40대의 남성 사이의 거리, 그들은 왜 그렇게밖에 만날 수 없었을까. 왜, 이 사회는 그의 죽음을, 그를 죽였어야 했던 청년들의 손끝을 애통해하지 않는가. 북에 가고 싶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현실이 온당한가. 헤어진 가족들을, 사랑하는 이를 생이 끝나도록 만나지 못하는 이 현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불쑥, 불쑥, 임진강을 건너려던 얼굴 모를 사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주 사적인 순간들, 예를 들면 너무 소중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저이를 만나기 위해 그 강에 뛰어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가 강을 건너려 했던 이유를 모르지만, 다만 생각해보는 것이다. 부표 같은 아이스박스를 매고 강에 뛰어들었던 그이처럼 나는 내 몸을 부표에 매달고 그 불순의 강에 몸 담글 수 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 강을 건너야 한다면, 나는.
문아영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Joan Baez - Donna Donna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 억압받는 존재들을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노래, 사람도 동물도, 모두
Sigur Ros - All Alright
듣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랑 - 임진강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것에 대하여
☮ Writer | 문아영
교사가 되는 공부를 하고 초등학교에서 짧게 근무하였다. 평화교육이라는 주제를 만난 후, “피스모모”라는 단체를 창립하였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한다.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2013년 9월 한 남성이 임진강 지류 탄포천에 설치된 철책을 넘어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헤엄을 쳐서 북한으로 가고자 했고 초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남(南)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던 그는 수백 발의 사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일본 정부에 정치적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추방되었다는데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왜 북한으로 가고자 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군으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반응과 살인행위이며 과잉대응이라는 비판이 함께 있었다. 당시 총격을 가했던 초소의 초병들은 그 사건 이후 포상을 받았다.
분단이란 무엇인가. 폭이 약 8백 미터밖에 되지 않는 임진강을 채 건너지 못하고 수백 발의 총격으로 사망해야 했던 그에게 분단은 무엇이었을까? 죽은 그의 몸이 물 위로 떠 올랐을 때, 그의 몸엔 스티로폼이 매여있었고 비상식량처럼 보이는 과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개개인들이 선택한 적 없는 전쟁과 역시나 선택한 적 없는 분단으로 인해 가고 싶은 땅에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없게 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그의 죽음을 접하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이름은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 친구와 함께 서독으로 넘어가던 중 동독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10대 후반의 청년이다. 페터는 담을 넘던 중, 고관절 근처에 총격을 받아 동독과 서독 사이의 무인지대로 추락했고 한 시간 가까이 고통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동독군에 의해 수습되었고, 그의 죽음은 서독의 큰 시위로 이어졌으며 이후 그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 다른 공간, 다른 시간, 그러나 닮아 있는 죽음. 하지만 죽음이 기억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베를린에는 페터를 기억하는 기념비가 있지만, 임진강에서 죽은 그를 기억하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페터 페히터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독군인들 ⓒ Guardian
강을 건너 북한으로 가고자 했던 그 사람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 사람의 사연에 대해 공개된 내용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의 사연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당시 국방부는 이 사건과 관련한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중지하라는 육성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월북하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을 사살 조치했으며 휴대한 여권을 통해 40대의 남모 씨임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 게시물에 국가안보 기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사살은 정당하며 월북하려는 빨갱이에게 인권이 어디 있느냐는 입장과 더불어 사살 명령을 수행한 일반 병사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심리적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댓글들을 남겼다.
그의 죽음은 애도 받을 수 없는 죽음이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빨갱이였을까? 빨갱이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만에 하나 그 단어가 그를 지칭하는 표현이 맞다고 한들 그의 죽음은 애도 될 수 없는 죽음인 것인가? 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그의 살 권리는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 맞는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분단이란 무엇일까?
임진강 ⓒ Kim Doo Ho
물리적인 분단은 그 분리를 확증하는 ‘경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경계’를 강조하는 방식은 ‘국가안보’라고 하는 공동의 목표를 기반으로 ‘경계 너머의 적’을 상정했다. 경계 너머의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자 ‘분단’은 더욱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고 그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이들은 ‘내부의 적’이 되었다. 그렇게 ‘분단’은 한국사회의 외부의 ‘적’과 내부의 ‘빨갱이’를 만들어내면서 자기검열과 상호검열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러한 자기검열과 자기분열의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내부의 불안을 일괄 해소할 수 있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것, 나와 적 사이의 명확한 선을 긋고 거리를 둠으로써 ‘나’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명확한 선이라는 건 불가능한 기획이며, 번번이 미끄러지는 이 기획을 붙들기 위해 필요했던 건 스스로의 순수함, 즉, ‘불순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여전히 그 선을 넘지 못한다. 불순함의 상징으로 굳어진 금단선 너머를 연결하고 넘나드는 일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좀처럼 어려운 일이다. 아, 그 선을 언제쯤 넘을 수 있을까.
그를 겨눈 총구 뒤의 20대의 남성들과 그 총에 맞아 숨진 40대의 남성 사이의 거리, 그들은 왜 그렇게밖에 만날 수 없었을까. 왜, 이 사회는 그의 죽음을, 그를 죽였어야 했던 청년들의 손끝을 애통해하지 않는가. 북에 가고 싶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현실이 온당한가. 헤어진 가족들을, 사랑하는 이를 생이 끝나도록 만나지 못하는 이 현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불쑥, 불쑥, 임진강을 건너려던 얼굴 모를 사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주 사적인 순간들, 예를 들면 너무 소중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저이를 만나기 위해 그 강에 뛰어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가 강을 건너려 했던 이유를 모르지만, 다만 생각해보는 것이다. 부표 같은 아이스박스를 매고 강에 뛰어들었던 그이처럼 나는 내 몸을 부표에 매달고 그 불순의 강에 몸 담글 수 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 강을 건너야 한다면, 나는.
Joan Baez - Donna Donna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 억압받는 존재들을 생각하면 떠올리게 되는 노래, 사람도 동물도, 모두
Sigur Ros - All Alright
듣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랑 - 임진강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것에 대하여
☮ Writer | 문아영
교사가 되는 공부를 하고 초등학교에서 짧게 근무하였다. 평화교육이라는 주제를 만난 후, “피스모모”라는 단체를 창립하였다. 사회혁신의 궁극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 그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본과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나빠지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한다. 실천적 사유에 관심이 많으며,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고, 북한산이 보이는 집에서 새촘, 우아, 레오, 라라,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