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나만의 완벽한 평화를 아는 법 / 김윤하

2020-06-30


나만의 완벽한 평화를 아는 법 / 김윤하


 난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다. 심지어 그 도시에서도 중심 중의 중심인 명동 한복판에서 태어났으니 이 정도면 도시 순혈 인간으로서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내미는 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될 테다. 얼핏 쿨해 보이는 이 자기소개는 그러나 실체를 알면 알수록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사연으로 변한다. 도시에 산다는 건 편의점, 도서관, 지하철, 영화관 등 각종 편의시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뜻인 동시에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가 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년 365일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을 만났고, 화장실 창문을 열 때마다 옆 건물 벽과 인사를 해야 했다. 어딜 가도 콩나물시루처럼 복작거리고 복작거리는 만큼 시끄럽고 시끄러운 만큼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것만으로도 끔찍하건만 도시는 한 술 더 떴다. 그곳은 도무지 공평하지 않았다. 만물에 평등하다는 대자연님의 너른 배포를 생각하면 좀 치사할 정도로 내 것 네 것을 따졌다. 서울 가면 코 베어간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도시는 가진 만큼 가져갈 수 있는 곳이었다. 실력이건 운이건 이미 많은 걸 가진 이들에게는 그만큼 많고 좋은 것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딱 그만큼 부족하고 후진 것들이 돌아갔다. 불평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람이 쥐 죽은 듯 순응하고 사는 세상에서 혼자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봤자 돌아오는 건 그만큼 게으르고 따라서 무능하다는 낙인뿐이었다. 그렇게 항의 다운 항의도 해보지 못한 채 다시, 평생을 살았다.


 피곤했다. 사실 피곤이 피곤인 줄도 몰랐다. 모든 순간 눈치를 보고 모두와 경쟁하는 것이 당연했다. 유치원에서 학교, 학원, 직장까지 어디든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줄을 서야 했고, 하다못해 만원 지하철 마지막 자리나 마지막 남은 할인 상품을 노릴 때마저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으로 임해야 했다. 모두 인생은 스피드, 기회는 찬스라는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삐끗하는 순간 남는 건 도태뿐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매일이 전시상황이었다. 전투의 크기와 모양만 다를 뿐, 사회가 정한 마지막 고지에 깃발을 꽂지 못하는 한 우리는 매일 패배하고, 후퇴하고, 다음날 눈을 뜨면 다시 전진해야만 했다. 평생 시달린 탓에 재생능력은 또 얼마나들 뛰어난지. 도시 좀비가 따로 없었다.


ⓒ 김윤하


 기분 나쁜 림보에 빠진 것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전투 속에서, 나만의 평화 사절단은 바다 건너로부터 우연히 찾아왔다. 내 나이 서른하나, 갑자기 하던 일 모두에 종료 버튼이 눌렸다. 노동의 마지막 불이 깜빡이던 어느 해 12월 31일, 충동적으로 종로에 있는 유학원을 찾았다. 서른이 넘어 고작 어학연수로 미국에 간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땐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탈락이 무서워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다’는 마음 정도로 인생의 다음 스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실제로 엄청나게 짜릿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내 인생의 숨통을 내가 끊었다. 도태의 벼랑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6년을 넘긴 연금 보험을 해지한 돈을 노잣돈 삼아 시애틀로 향했다. (손해가 컸다) 친한 친구 부부가 살고 있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연고도, 관심도 없던 곳이었다. 아직 겨울 우기가 끝나지 않아 마치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침마다 비가 오는 3월의 시애틀에서, 잠시는 향수병에도 시달렸던 것도 같다. 마지막으로 학교 문을 밟아본 지도 어언 10년이 되어 가는 나이에 팔자에 없는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만만치 않은 거리의 등굣길을 오가자니 여간 서러운 일이 아니었다.


 시애틀 행 직항을 호방하게 끊었던 짜릿함의 여운이 시애틀 블루로 잊히려는 찰나, 그 인간들을 만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야, 대만에서 온 모니카,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온 카밀로. 나이도 국적도 모두 다른 친구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단언컨대 시애틀에서 가장 강도 높은 멍청이들이라는 점이었다. 돈 아까운 줄은 알아 학교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수업이 끝난 1시 언저리가 되면 어김없이 로비에 모여 오늘은 또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해볼까 함께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다. 하루라도 망하지 않는 날이 없었고, 하루라도 조용하게 넘어갈 날이 없었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이 멍청이들은 한 달짜리 버스 정액권 한 장만 있으면 시애틀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웃고 울고 떠들고 넘어지고 다시 웃을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소란스러운 건 내가 태어난 도시와 마찬가지였지만 소음의 재질이 달랐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이었다. 나의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전공도, 직업도, 경력도 상관없는 나의 멍청한 시애틀 친구들은 그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든 순간을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어떤 의무나 책임 없이 오로지 내가 나일 수 있는 순간들, 비로소 맞이한 해방이자 처음으로 만나는 진정한 평화였다. 케리, 골든 가든스, 그린 레이크, 워터 프런트, 가스 웍스 등등 시애틀에 존재하는 공원이란 공원은 전부 검색해 뛰어다녔고, 프리스비를 던졌고, 물 담배를 피웠다. 어느 여름날이었던가. 잔디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내 눈에 아무 의미 없는 꼬리잡기를 하며 꺄꺄 소리를 질러대는 마야와 모니카, 카밀로가 들어왔다. ‘평화롭네’.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중얼거렸다.


ⓒ 김윤하


 물론 아무도 한국어를 몰랐으므로 그 평화로운 순간이 만든 울림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만 남았다. 뭐, 그걸로 충분했지만. 그 해 겨울, 우리는 아마 평생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며 SEA-TAC 공항에 눈물로 통곡의 벽을 만들었다. 웬만한 기억은 그 눈물 바람으로 떠나갔지만, 그 마법처럼 평화롭던 순간만은 내 삶에 아직도 이만큼이나 깊은 흔적을 남겼다. 여전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나는 대부분의 순간을 순응한 채 조금씩 낡아가고 있지만 전과는 다르다. 오늘도 여전한 도시의 소음에, 도시인들의 무례에, 도태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완벽한 평화를 알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




김윤하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나만의 평화사절단 겸 시애틀 최고의 멍청이들과 시애틀을 뒹굴며 들었던 노래들. 


Carly Rae Jepson - Call Me Maybe

2012년 어딜 가나 흘러나오던 ‘Call Me Maybe’ (‘강남스타일’은 기억에서 지웠다)




Glenn Medeiros & Elsa – Friend you give me the reason

정해진 이별을 생각할 때마다 청승 떨며 들었던 ‘Friend you give me the reason’.




Sarah Mclachlan – Adia 

먼저 떠나는 친구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듣던 ‘Adia’.







☮ Writer | 김윤하


케이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말하고 이야기합니다.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출연하고 있습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