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DMZ에서 군가를 ‘뒤집어’ 노래하다

2019-07-04

DMZ에서 군가를 ‘뒤집어’ 노래하다 

2019-06-09 


철원 ‘디엠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북 옛 노동당사서 개막 알린 ‘우정의 무대’
뮤지션들, 재즈풍 연주로 군가 폭력성 역설
원문보기| http://bit.ly/2XGaOJH


강원도 철원에 노동당사가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이곳이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콘크리트 건물이다. 6·25 전쟁 당시 총탄과 포탄이 할퀸 상처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전쟁 이전에는 공산 치하에서 반공 활동을 하던 이들이 잡혀 와 고문과 학살을 당한 곳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4년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를 이곳에서 찍으며 평화통일을 꿈꾸는 노래를 했다.


지난 7일 저녁, 노동당사 앞에서 군가가 울려 퍼졌다. 군인들이 상주하는 접경 지역에서 군가가 들리는 건 일상이지만, 이날의 군가는 달랐다. 군악대를 대신한 10인조 빅밴드의 연주는 재즈풍이었고, 군인을 대신한 백현진·김사월·김해원·김지원 등 인디 음악인들의 노래는 자유분방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무용수들은 군가에 맞춰 다소 우스꽝스러운 춤사위를 펼쳤다. 이날부터 사흘간 철원 일대에서 열린 ‘디엠지(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는 특별공연 ‘우정의 무대’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해원이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라고 ‘압록강 행진곡’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로 시작하는 익숙한 노래 ‘전우여 잘 자라’를 불렀다. 2절 순서가 되자 김사월이 등장했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하늘하늘 몽환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부르는 군가는 애달팠다. 군악대의 힘찬 행진곡 연주에 애용되는 악기 트롬본이 구슬픈 솔로 연주를 울음처럼 토해냈다.


김사월은 이 공연을 준비하다가 군가의 폭력적인 가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도저히 감정을 이입해 부를 수 없다고 여긴 그는 그만두는 것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무대 연출을 맡은 장영규 음악감독이 “군가가 얼마나 맹목적이고 부조리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군가에 담긴 폭력성을 해체하는 게 이 공연의 목적”이라고 설득하자 그제야 납득하고 연습을 이어갔다고 한다.


장영규와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백현진이 등장했다.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조국이 있는 곳에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는 곳에 충성이 있다”(‘조국이 있다’)고 노래했다. 그가 입은 티셔츠에는 ‘국가’라고 쓴 위에 엑스(X)표를 쳐 놓았다. 노랫말과 상반되는 메시지가 뒤통수를 때렸다. 그는 그렇게 전체주의와 획일주의를 비꼬았다. 어떤 관객은 이 노래에 맞춰 까딱까딱 춤을 췄다.


김사월이 ‘전선을 간다’를 부를 즈음, 작은 드론이 떠올라 공연장 일대를 촬영했다. 어떤 드론은 아름다운 광경을 담고, 어떤 드론은 전선에서 폭탄을 떨군다. 전투기 대신 무인항공기 드론이 정찰하고 폭격하는 시대에, 백현진이 전투기 조종사의 노래 ‘빨간 마후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라는 대목이 유난히 의미심장한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밴드 ‘빌리 카터’의 김지원이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로 시작하는 ‘너와 나’를 불렀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이으랴/ 남북으로 끊어진 겨레의 핏줄”이라는 대목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군인이 부를 땐 무력통일을 의미했겠지만 온 국민이 부르면 평화통일의 의미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부른 노래는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로 시작하는 ‘예비군가’였다. 전역하고 민간인이 돼서도 “총을 들고 건설하며” “나오라 붉은 무리 침략자들아”라고 노래해야 하는 우리들은 여전히 거대한 병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지금도 ‘좌빨’ 운운하는 댓글이 넘쳐나는 것 또한 무관치 않을 터다. 씁쓸한 여운을 남긴 마무리였다.




장영규 감독은 “철원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많이 불리었을 군가를 부르되, 그 노래 안에 함몰되지 않고 군가가 가진 가사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사운드로 그 가사를 비틀어버리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며 “나아가 이런 탈이데올로기적 프로젝트를 통해 언젠가는 철원의 지역성이 계절과 풍경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