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 정혜윤

2019-03-12 14:00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 정혜윤 


 17살의 나는 은은한 펄이 들어가 파란빛으로 반짝거리던 내 파나소닉 CDP를 보물처럼 아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내 방 안으로 돌아오면, 모든 순간이 즐거운 나만의 리추얼이 시작되었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노란색 램프를 켜고, 침대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열어젖혔다. 듣고 싶은 노래들을 미리 구워둔 CD를 조심스럽게 옮겨 내 CDP에 넣고 닫으면, 찰칵하는 느낌이 났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CD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제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구경할 차례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떤 모습이든 좋았다. 음악이 방 안의 공기를 가득 채우면, 모든 종류의 하늘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사랑스러웠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노래와 빗소리가 섞여 내 방안은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맑은 날에 뭉게구름이 보이면 <마리 이야기>에 나왔던 마리와 함께 구름 위로 올라가는 상상을 했다. 먹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날이면 구름이 아니라 우리 집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매일같이 몇 시간이고 노래를 들으며 누워있었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 멍때리는 시간이 쌓여 '현재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생각들이 고삐를 풀고 나와 마음대로 방안을 둥둥 떠다녔다. 17살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라는 사람과 '내 인생'에 대해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나는 머리가 많이 자랐다. 나만의 공간과 내가 만들어낸 작은 의식 안에서 의도치 않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했다. '마음 챙김'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일종의 명상을 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낸 가장 작은 형태의 평화였다. 내가 나를 인지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것.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 혼자만의 힘으로도 충분한, 여전히 지금도 연습 중인 가장 작은 형태의 평화.


사진 | 김슬기 @seulzzangkim


 가끔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조용히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요가를 마치고 사바사나 자세로 매트 위에 누워있을 때. 오래된 가게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 봄이 올 무렵 거리에서 라일락 향기가 느껴질 때.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글을 쓸 때. 한강에 햇빛이 반짝반짝 아른거릴 때. 주로 혼자 있을 때 현재에 머무르는 작은 순간, 마음속에 이런 정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반면, 많은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커다란 스케일의 평화, 조금 더 동적인 평화를 경험한 적도 있다.


 상상하기 좋아하던 난 어릴 적부터 <마리 이야기>처럼 언젠가 나에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내가 모르는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일상 속의 일탈을 꿈꾸곤 했다. 마리와 함께 구름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었지만, 현실이라기엔 다른 세상 같고, 꿈만 같다고 느껴지는 곳에 다녀온 적은 몇 번 있다. 영국 소머셋의 농장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에 지금까지 두 번을 다녀왔다. 1970년부터 시작된 역사 깊은 이곳은 내가 지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이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평화'와 가까운 곳이다.


 글래스턴베리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농장이 있을 자리에 1년에 5일간 도시가 들어선다고 생각하면 된다. 크고 작은 무대 수만 100개가 넘고,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 앞에만 약 10만 명을 수용한다. 어떨 때는 무대에서 다른 무대까지 걸어가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상업적인 느낌도 없다. NGO 단체인 그린피스와 옥스팸, 워터 에이드를 후원하고, 페스티벌의 곳곳에서 환경, 평화, 어우러짐의 가치를 외친다. 이곳에 모이는 약 17만 명의 사람들은 5일간 이 마을의 주민이 된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모여 다른 모든 차이점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다.


 이곳에서 난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감동하는 일이 잦았다. 어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들의 팔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다녀왔을 수십 개의 글래스턴베리 팔찌가 있었다. 돌리 파튼의 공연을 볼 때, 컨트리 음악이라 그런지 가족이 많았다. 수만 명의 인파 위로 목마 탄 아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귀를 보호해주는 어린아이용 헤드폰을 쓴 아이들이 아빠의 어깨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비틀스 커버 밴드를 보러 갔을 때, 사람들이 몰려 공연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공연장 밖의 사람들끼리 음악을 따라 부르며 춤을 췄다. 비틀스의 ‘Twist and Shout’에 맞춰 에어 기타를 치는 할아버지, 엉덩이를 흔드는 아이들, 좌우로 리듬을 타는 커플이 보였다. 트위스트 춤을 추며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아이가 되었다.


사진 | 정혜윤 @alohayoon


 토요일 밤에는 아델이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로 밥 딜런 커버 곡인 'Make you feel my love'를 불렀다. 웬만한 마을 인구보다도 많은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핸드폰 불빛을 켜고 떼창을 했다. 내 바로 앞에는 어느 노부부가 부둥켜안고 있고, 꽃 화관을 쓴 친구들끼리 어깨동무를 한 채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그 너머로는 수만 명의 목소리와 함께 불빛이 일렁거렸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말도 안 되게 멋지고 반짝거려서 감정이 벅차올랐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나 역시 조금씩 울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만 명의 사람이 나이, 국적, 종교와 아무 관계 없이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보면 현실에서 네 편, 내 편 가르며 싸우는 모습들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이분법으로 규정지으며 분류하기 전에 그 사람은 나처럼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벅차 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인걸.


 평화란 나에게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서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정적인 평화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다양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 공존하는 동적인 평화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이 어려운 일을 조금은 쉽게 만들어 주는 게 음악이다. 음악 앞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하나가 된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70억 인구 중 단 하나뿐인 목소리로 제각각의 삶을 노래한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그저 함께 춤을 추는 동물이 된다. 그래서 난 올해도 무대 앞을 찾아갈 계획이다.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과 하나가 되어 그 시간 속을 살기 위해서. 각자의 모습으로 제각각의 평화를 즐기기 위해서.



정혜윤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David Bowie - Heroes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데 기여한 노래. 1987년, 보위가 서독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동독 사람들도 벽 너머에서 함께 노래했다. 우리도 언젠가 함께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Judy Kuhn - Colors of the wind (Pocahontas OST)

지구, 자연과의 평화도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선곡했다. 지금 들어도 가사가 눈물 나게 아름답다.

 


 

아이유 - 무릎

아이유가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노래.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마음과 일상 속의 평화를 너무나 정성스럽게 한 글자씩 눌러 담은 가사.



  

☮ Writer | 정혜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회사와 세계 곳곳을 유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뭔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깁니다. 음악, 여행, 우주, 오래된 것들을 좋아합니다.음악 콘텐츠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