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제가 생각하기에 평화는 머리를 안 감는 거예요 / 문보영

2019-03-26


가 생각하기에 평화는 머리를 안 감는 거예요 / 문보영


 평화에 관해 생각하다가 평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화가 무얼까. 내가 바라는 건 평화인가? 평화는 왜인지 큰 개념 같다. 평화를 잘게 자르면 “진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내가 소망하는 건 진정하기이고 평화는 조금 더 적극적인 개념의 진정하기인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올드시티를 달리며 나는 평화의 한 이미지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사거리에서 서양인 커플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사오십대의 중년 남성이었다. 오른쪽 남성은 큰 키에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왼쪽에 선 남자는 푸른 모자를 썼다. 둘 다 몸에 상처가 있었다. 한 명은 팔꿈치에 커다란 밴드를 붙였고, 한 명은 정강이 부근에 붙였다. 같은 이유로 다친 것 같았다. 호랑이에게 공격을 받았거나 바다에서 상어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있었는데 길을 건널 때, 오른쪽 남성이 한쪽 팔로 다가오는 차량에 신호를 주기 위해 손을 놨다. 차가 멈추자 한 명은 또 다른 차량이 오는지 보기 위해 좌우를 살폈고 한 명은 정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서도 자연스럽게 손을 다시 잡고 길을 건넜다. 사랑에 빠진 인간들은 손가락 끝에 여분의 눈알이 생겨 손은 손을 알아보고, 얼굴에 부착된 두 개의 눈알의 도움 없이도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김슬기 @seulzzangkim


 올드시티를 감싸는 강 앞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평화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오늘 머리를 감지 않았다고 답했다. 교회에 나갔는데 성가대 연습을 하다가 머리를 안 감았다고 말했는데, 두 살 많은 남자가 친구에게 “머리 왜 안 감아요?”하고 물었고, 친구는 세간 사람들이 궁금한 걸 실제로 물어보는 게 신기했다. 친구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질문하라>는 명령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였고 (친구는 태음인이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유일한 질문은 ‘왜 질문을 하라고 하나요?’였지만, 이 질문 또한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왜 사람들이 자신에게 질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정 질문이 하고 싶다면 열 번 정도 내면에서 질문 리허설을 거치는 성의 정도는 보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내면에서 열 번 거치고 난 다음 발화된 <머리 왜 안 감아요?>는 현장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발화된 <머리 왜 안 감아요?>와 한 글자 아니 획조차 다를 바 없었지만 두 문장은 에너지, 감정, 여유, 비폭력성, 배려, 이해력, 분노와 절망, 사해동포주의, 만민평등사상, 심미성 등의 요소에서 다채로운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친구는 생각했다.


 cf. 참고 자료


내면의 리허설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


 “머리 왜 안 감아요?”라는 질문에 친구는 “예수님도 머리 안 감으셨어”라고 답했다. “네?”, “성경에 그런 말 없잖아. 머리 안 감는 건 기본이지” 친구는 답했다. 더구나 대다수의 질문은 내면에서 십 회의 발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저절로 해소되거나 자연사하여 마음의 고운 흙으로 돌아간다고 그녀는 믿었으며 그것이 질문이 바라는 바람직한 인생의 행로일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이 평화의 기본인지도 몰랐다.


 자전거를 타고 올드시티 내부를 돌다가 태국 국수 한 그릇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바가지에 물을 퍼 변기를 내려야 했다. 벽면엔 “There is no magic. You have to do it by yourself (이곳엔 화장실 마법 따윈 없어. 내가 싼 건 직접 처리하도록 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로마 시대에는 공중변소가 유행했다. 당시에는 끊어 쓰는 두루마리 휴지가 없었다. 대신 막대기를 이용했다. 막대기 끝을 해면으로 감싸 그걸로 밑을 닦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공유했다. 위생을 고려해, 한 번 쓴 막대기는 흐르는 수로(화장실이 하수도 안에 있었다)에 씻은 뒤 식초가 담긴 유리병에 담갔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똥을 누고 뒤를 해면으로 닦았다. 앞으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로마 시대 공중변소 풍습을 떠올리기로 했다. 로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네 똥 닦은 거’로 내 똥을 닦고 ‘내 똥 닦은 거’로 네 똥 닦은 사이였을 테니까. 외부 세력과 전쟁이 잦았으므로 내분이 일어서는 안 되었고, 따라서 자국민끼리는 합심해야 했으므로 사랑이라는 형식을 공동화장실과 공동화장지라는 제도로 뒷받침했던 것은 아닐까. 평화 비스무리한 걸 위해서.



문보영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Cigarette after sex - Nothing’s gonna hurt you baby



Molly Burch - Please be mine



정경화 - 나에게로의 초대




 태국에서 귀국하던 날 한국에 가기 싫어서 울었는데, 태국 카페에서 앞의 두 곡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태국이 나를 배웅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답례로 휴대폰 플레이리스트의 첫 번째 곡인 정경화의 곡을 틀었다. 사람들이 곡 추천으로 대화를 대신 한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것이다.



☮ Writer | 문보영


시인. 내가 사랑하는 것은 친구들이다. 나는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약속 무능력자이다. 약속을 하면 약속 장소에 안 나온다. 물론 나도 약속 무능력자여서 안 나간다. 결국 약속 혼자 약속 장소에 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래서 친구들을 뵙기가 수월치 않다. 우연을 가장해 만나거나, 통화를하다가 충동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우정이 유지되는지도 모른다.